“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 위기는 없다. 우리가 더 걱정하는 것은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의 침체로 파급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힌 현 경제 상황에 대해 내린 진단이다. 이 대통령은 그래서 “해법도 10년 전과는 달라야 한다”고 했다. 달라진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적극적인 국제 공조 ▦충분한 유동성 공급 ▦내수 활성화 등 3가지. G20 정상회의 등 국제 공조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한 만큼 향후 추가적인 대책의 방점은 내수 활성화에 찍힐 전망이다.
■ 감세-재정지출 확대 쌍끌이
내수 부양에 정책의 무게가 실리는 것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 둔화세가 확연해진 탓이다. 세계 각국의 경제가 동반 침체하는 상황에서, 내년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세는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이날 홍콩ㆍ도쿄 국가설명회(IR) 결과 브리핑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중국 경제의 하강에 따른 수출 타격 우려였다”고 말했다. 수출의 빈 자리를 내수가 메워주지 않으면 장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세계적 실물 경제 침체에 대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며 “감세 역시 경기 진작의 일환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 최종 조율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예산 지출 확대 규모는 5조~7조원 수준. 이 대통령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 ▦고용 효과가 큰 중소기업 및 서비스산업 지원 확대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 규제 완화 가속화
현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거듭 강조해 온 규제 완화도 ‘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활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정면 반박한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배는 결코 출항할 수 없다. 위험이 두려워 규제를 풀지 말자는 것은 선수가 다칠까 봐 경기에 내보내지 말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이 대통령)는 것이다.
당장 30일 열리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수도권 공장규제를 단계적으로 푸는 등 덩어리 규제 완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규제가 줄어야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겨난다”며 “이른바 국민 정서를 빌미로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는 덩어리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했다. 지식경제부 역시 최근 내부 보고서에서 “제조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추가 감세와 맞물려 기업들의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김동수 재정부 1차관은 이날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강화 등을 통해 기업의 투자 확대를 적극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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