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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서울대 명예교수, 자서전 '말' 44년 만에 재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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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서울대 명예교수, 자서전 '말' 44년 만에 재번역

입력
2008.10.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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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자서전으로 꼽히는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자서전 <말> 이 44년 만에 새로 번역돼 나왔다.

최근 민음사에서 발간된 <말> 은 고 김붕구(1922~1991) 서울대 교수와 함께 1964년 이 책을 번역했던 정양환(79) 서울대 명예교수가 본문을 수정하고 새로 주석을 단 판본이다.

정 교수는 이 책의 해설에서 "1964년 <말> 의 출간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그 해 가을 사르트르가 노벨상 수상을 거절하자 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김 교수와 함께 거의 한 달 만에 번역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내가 맡은 1부의 번역에는 지금 누가 들추어볼까 겁이 날 정도로 잘못된 곳이 많았다"며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권유로 개역을 시작해 1년 반에 걸쳐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자서전은 한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시절로부터 시작된다. 그 시절은 사르트르의 정신적 토양이 됐다. 이 책의 1부와 2부인 '읽기'와 '쓰기'가 그 토양이다.

키 작고 병약했으며, 약한 사시(斜視) 증세를 보였던 소년 사르트르는 양서로 가득찬 외조부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일곱살 무렵부터 외조부와 운문으로 편지를 교환한 일화 등을 들려준다.

정 교수는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자존감을 획득했던 사르트르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이를 일종의 '문학병'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르트르는 자서전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구해 주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속임수로 나를 끌어넣었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말> 을 쓸 무렵 '문학 결별' 선언을 하며 문학과 현실참여의 분기점에서 양자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던 사르트르의 심경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러나 자서전 말미에서는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라도 적고 있다.

정 교수는 이는 단순히 정치적 참여를 촉구하기 위한 문학이 아니라, 정치는 정치대로 중시하되 기존질서를 비판하고 절대미의 경지를 추구하는, '정치적 참여를 넘어서는 문학'을 추구하겠다는 사르트르의 문학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말> 을 어떤 각도에서 읽느냐의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각도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야릇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사르트르의 여러 철학적 저서와 문학작품의 씨앗을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고, 또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귀중한 시사를 얻을 만하다"고 <말> 이 가지는 의미를 밝혔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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