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특파원 칼럼] 역사교과서에서 뭘 배울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특파원 칼럼] 역사교과서에서 뭘 배울까

입력
2008.10.28 00:16
0 0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대학 시절부터 오랫동안 공산당원이던 교육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다쿠쇼쿠(拓植)대 교수는 냉전이 끝난 후 보수논객으로 전향했다. 일본의 과거에서 자랑할 만한 역사를 찾아내고 배우자는 자유주의 사관을 제창한 그는 자유주의사관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1996년 대중 역사서를 한 권 낸다.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역사책은 2006년까지 시리즈로 4권이 나와 모두 12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일본 새역모의 후소샤 교과서

후지오카는 1997년 독문학자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등과 함께 이런 사관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발족한다. 새역모는 역사교과서, 특히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필요 이상으로 일본을 폄하하는 '자학(自虐)사관'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극복하고 청소년들이 일본인으로서 자신과 책임을 갖게 하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새역모가 97년 1월 30일 첫 총회 당시 낸 창립 취지서의 내용은 이렇다. "일본의 전후 역사교육은 일본인이 이어 받아야 할 문화나 전통을 잊고 일본인의 자랑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일본인은 자자손손 이어 사죄하는 것을 운명으로 짊어진 죄인 같이 취급되고 있다.

냉전 후 자학적인 경향이 강해져 현재의 역사교과서는 종군위안부 같은 옛 적국의 선전을 사실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 모임은 세계사적 시야로 일본과 일본인의 자화상을 품격과 균형을 갖고 활자화해서 선조의 활약에 가슴 설레고 실패의 역사에 눈을 돌려 그 고통과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는, 일본인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그것이 청소년들이 일본인으로서 자신과 책임을 갖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교과서가 2001년, 2005년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대표적 극우 교과서인 후소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이다. 역사의 과오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일본인의 긍지와 자랑을 강조하는 이 교과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인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자존자위와 아시아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미화한 당시 군부의 선전 용어 그대로 '대동아전쟁'으로 쓰고 있다.

나치스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기술하면서도 전쟁 중 일본의 잘못은 거론하지 않는다. 전세(戰勢)가 악화해 일본 국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미군의 공습과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인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를 소개하면서 그런 '실패'에서 배울 것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도 후소샤식 수정?

새역모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교과서포럼 등 한국 보수단체들의 교과서 수정 요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실제 교과서 검정 기준으로 반영되려는 것 같다. 교과서 내용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닌데 그 동안 아무 소리 않고 있던 국방부, 통일부 등 정부 부처까지 나서 거들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교과서 수정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 역사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거나 "자학의 패배적 역사인식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로 바로 세우기 위한 시도"라는 인식을 가진 것 같다. 잘못한 역사에서 배우려는 겸허함보다 자랑스런 역사 운운하는 긍지가 앞설 때 역사교과서가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 새역모 교과서를 보고 배우기 바란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