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과 공책 말고도 학교에 가져가야 할 특별한 물건들이 있었다. 기생충 박멸기간에는 검사를 위해 대변을 받아가야 했고 쥐 잡는 기간에는 쥐를 잡아 그 꼬리를 잘라오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가야 했는데, 연신 들락거리는 콧물을 훔치기 위한 것이었다. 거의 매일 흙을 만지면서 놀았지만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아토피는 면역정보 부실한 탓
요즘 아이들은 거의 흙을 밟지도 못하지만 매일 온 몸을 씻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항균'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생활용품이 인기를 끌고 의학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항생제가 처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기생충과 쥐 대신에 세균이 박멸해야 할 우리의 적이 되었다.
그런데 몇몇 세균과의 전투에서는 큰 전과를 올렸지만 인간은 결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내 몸 속에는 내 몸에 속하는 세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세균이 살고 있으니 오히려 세균이 내 몸을 점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 사태를 전쟁에 비유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래서 이제는 세균을 비롯한 각종 미생물과의 불화를 끝내고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미국 미생물학회가'세균을 구해 세상을 구한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멜로디의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미생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애쓰는 걸 보면 달라진 세상이 실감난다.
서울에 사는 7세 이하 영ㆍ유아 10명 가운데 2명이 아토피 피부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 환경에서 나오는 각종 화학물질과 간접흡연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 병이 면역반응이 과민해서 생기는 알레르기의 일종이니까 원인물질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원인물질을 콕 집어내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것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세균과의 전투에서 사용된 항생제처럼 화학물질을 퇴치할 결정적 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의학자들은 이 병의 원인이 되는 몸 밖의 어떤 '것'이 아닌 우리 몸이 겪어온 경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위생 가설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 몸은 어려서부터 미생물을 비롯한 체내ㆍ체외 환경과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 우리의 면역계는 그 과정에서 얻어진 내외환경의 정보를 수집ㆍ보관하여 이후에 비슷한 자극이 주어질 때 대응하는 정보기관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면역계는 이런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조그만 외부 자극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그 결과가 아토피나 비염 또는 천식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토피는 주변과 친해지지 못해 친구마저 적으로 여겨 공격하는 못된 버릇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모든 과학자가 이 위생 가설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생물이 박멸해야 할 적일 때보다는 서로 사귀어야 할 친구일 때가 더 많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것이 적인지 친구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면역계인데 그것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 면역계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다양한 능력을 기르는 교육장소이지 일방적으로 세균을 죽이는 첨단 병기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다. 그래서 면역은 강하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거나 단순한 것이고, 아토피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배우지 못한 면역계가 세계를 자기 기준으로 단순하게 해석한 결과다.
경쟁만 가르치는 교육도 문제
이 논리를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을 가르쳐서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수 없다. 다양한 이웃들과 만나 서로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스스로 세상을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 경쟁에 유리한 조건들을 물려주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면서도 따뜻한 투자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많은 아이들이 정신적 아토피를 앓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ㆍ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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