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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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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리더십

입력
2008.10.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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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 속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리더십이 새삼 거론된다. 지금의 위기상황과 1929년 대공황의 유사성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도로, 위기 극복을 이끈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지혜를 얻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더러 ‘위대한 대통령’의 재현을 바라는 절박한 심정을 반영한다. 위기의 발원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터라, “오바마가 루스벨트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 ‘비정한 대통령’ 후버의 실패

이런 논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루스벨트의 전임자 허버트 후버에 관한 기록이다. 대공황 첫해에 취임한 후버 대통령은 당시 앞선 분야인 지질학을 전공한 광산기술자 출신의 경제 전문가였다. 국내외 현장과 기업, 대학 등을 거쳐 공화당 정부의 상무장관으로 산업 전반의 ‘효율성 혁신’을 이끌면서 역량을 과시,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그의 자질은 일찍이 민주당의 윌슨 대통령이 후계로 지목할 정도였다. 그러나 “1920년대는 공화당 시대가 될 것”이라는 소신을 좇아 공화당을 택했고, 미국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쉽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고학으로 야간고등학교를 나와 지금의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의 성공 신화는 거기서 끝났다.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온갖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의 나락 깊숙이 추락했다.

주목할 것은 후세의 평가다. 그는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무능한 대통령’의 오명을 끝내 씻지 못했으나, 후임 루스벨트가 실행한 ‘뉴딜(new deal)’ 정책의 태반은 후버 행정부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세금 인상 등의 실책 외에도, 국민과 교감하는 리더십과 정치력 부족이 결정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후버는 관료체제와 전문지식, 기업과의 협조 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를 앞세웠다. 특히 피폐한 국민의 삶을 구제하는 방책으로 사회의 자발적 지원과 자조(自助)를 강조했다. 미국 사회의 이념과 질서에 어긋나지 않았으나, 국민은 그를 ‘무감각하고 비정한 지도자’로 인식했다. 이 때문에 1932년 대선에서 참패, 퇴임 뒤에는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대공황 한복판에서 등장한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유명한 취임 연설로 국민의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연설을 후세 역사가들은 흔히 대공항 극복의 시작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한층 주목할 대목은 연설 첫 머리에서 무분별한 이윤추구로 경제위기를 초래한 은행가 등의 ‘이기적 자본주의’를 질타, 실업자 구제 등 ‘사회적 가치’ 구현을 경제회복의 중심으로 삼을 것을 다짐한 것이다.

‘뉴딜’ 용어도 후보수락 연설에서 “정부의 정책 철학에서 잊혀진 미국 국민을 위한 뉴딜을 맹세한다”고 선언한 데서 비롯됐다. 뉴딜은 새 출발, 완전한 전환 등을 뜻한다. 역사학자들도 뉴딜 정책을 ‘구제, 회복 및 개혁(relief, recovery and reform)’으로 요약, ‘사회적 가치’ 구현 다짐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평가한다. ‘사회적 가치’는 다름 아닌 ‘민주적 가치’이다.

■ ‘루스벨트 신화’와 민주적 리더십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를 변화시킨 ‘루스벨트 신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를 터득한 개인적 자질이다. 루스벨트가 ‘노변정담’(fireside chat)으로 불린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을 위무하고 용기를 북돋운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일방적 연설이 역사에 길이 남은 배경은 루스벨트가 각료와 참모 등 공식 계통뿐 아니라 비공식ㆍ개인적 채널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와 정보를 듣고 연설과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과의 정담(情談), 따듯한 대화가 됐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져는 루스벨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탁월한 정치 감각과 직관력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했다. “지도자의 으뜸 과제는 관료체제의 벽을 넘어 정보와 정책 아이디어를 얻고, 국민과 의회의 관심과 이해와 정치적 타이밍을 직관으로 헤아리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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