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서 추진하고 있는 교육 개혁의 기조는 정부의 통제를 지양하고 자율과 경쟁을 높여 교육 선진화를 달성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기조는 원칙적으로 당연하고 올바른 방향이다.
이제 더 이상 대학 문만 열면 학생이 몰려오는 시대는 지났다. 대학 교수의 자리가 '철밥통'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학생 모집을 위해 교수들까지 나서고 있고, 정년을 보장 받지 못하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이유로 대학간 통폐합이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총장과 보직자들은 교육내용 개선 보다는 발전기금 모금에 온 정열을 쏟고 있으며, 국립대학조차 소위 지주 회사를 설립해 돈벌이에 몰두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동안 현실에 안주해 온 대학 교육을 생각하면 이러한 변화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고, 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물결에 대해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기존의 전문대학, 산업대학, 특수대학 등 다양한 형태의 대학은 사라지고 모두가 4년제 대학, 종합 대학, 연구 중심 대학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그 결과, 국립대학에서조차 기초 학문 분야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다. 이러한 추세는 제동 장치 없이 달리는 철마(鐵馬)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유전자 풀의 다양성이 감소하면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처럼 대학의 획일화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현대 사회의 고등교육은 매우 복잡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학문 연구와 전문가의 양성은 물론이고, 산업 인력 및 사회 지도자의 양성에 더해 국가 정책을 제안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대학이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대학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연구 중심 대학이 있어야 하는 반면 교육 중심 대학도 있어야 한다. 종합대학 이외에 전문대학과 산업대학도 있어야 하고 사립대학이 있어야 하는 반면 국립대학도 있어야 한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기능 구분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기능은 서로 달라야 하고, 따라서 운영 및 재정 지원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 사립대학은 그 성격상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야 하고, 인기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 모집과 대학 운영 등에 대한 국가의 간섭은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립대학은 이와는 다르게 운영되어야 한다. 인기는 없지만 사멸되지 않아야 하는 기초 학문 분야는 국립대학에서 감당해야 한다. 극빈자, 장애인은 물론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 계층에 대한 교육적 배려도 국립대학이 감당해야 한다. 또 국방, 치안 등 국가 안위에 관계되는 분야의 인력 양성도 국가의 몫이다.
이렇게 본다면,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은 발전 방향과 대학 평가의 기준은 물론 대학 육성을 위한 지원 방식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 평가와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식은 이러한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동일한 잣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은 대학들의 안일한 운영을 떠올리며 이러한 변화를 내심 반기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경영 차원에서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효과보다는, 학문 발전의 본질을 고려해 더 사려 깊게 대학 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대학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학문이 선진화하고 활기찬 국가의 건설에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권재술 한국교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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