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렵다. 정말 어렵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그 때는 그래도 결기가 남아 있었다. 고통을 나누자, 한국을 사자(Buy Korea), 금을 모으자고 외쳤다.
지금은 어떤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다. 공포가 만연해 있다. 오죽하면 아침 인사가 “밤새 안녕”이고 저녁 인사가 “살아 남자”이겠는가.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좌절하고 무너지든가, 아니면 처절하게 맞서 이겨내는 것이다. 이는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럼, 답은 무엇일까. 물어보나마나다. 죽지 않으려면 맞서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그저 막 싸워서 이기기가 어렵다. 전 세계가 휘청거리는 마당에 어느 누구 혼자 발광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결국 모두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너무 상식적이라고? 맞다.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그게 실천하기가 여간 어렵다.
우리를 한번 보자. 다 아는 상식을 실천하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량 중소기업들이 나자빠지는데 대출을 조이는 은행들, 나라가 거덜 나든 말든 달러를 사재기하는 사람들…지극히 이기적인 모습들이다. 모래알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실력은 없으면서 고집만 센 경제수장, 사진 찍는 데만 찾아다닌다는 금융수장…이들이 어떤 말,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약효가 먹히지 않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위기극복의 출발점을 신뢰 회복에 두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이 점도 모두가 다 안다. 이명박 대통령도 27일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믿음을 역설했다. 그러나 믿음이 쉽게 형성될 것 같지 않다. 왜냐고? 말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정부가 2%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종부세 낮추기에 그토록 열을 올리는 모습을 의아한 시선으로 보았다. 대선 때 신물나게 들었던 “세금을 깎아줘야 부자들이 돈을 써서 서민들이 먹고 산다”는 ‘낙하(trickle down)이론’을 아직도 써먹는 정치인들도 보고 있다. 따뜻한 사회를 공약해놓고 사회복지예산이 마구 잘린 새해 예산안도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이 생기겠는가.
그래도 아직은 길이 있다. 집권세력 내부에서 낮은 곳을 향하는 목소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비록 너무 튄다, 품격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을 받지만, 홍준표 원내대표가 종부세 기준 상향조정을 반대하고 직불금 문제에 얽힌 공직자를 감쌀 이유가 없다고 했을 때 신선했다. 국민을 보고, 낮은 곳을 향하고 있기에 나온 얘기들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말과 글이 무거운 장명수 한국일보 고문이 사석에서 “인간 냄새가 난다”고 평할 정도였다.
우리는 “부자에 대못 박는 것은 괜찮냐”고 강변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서 좌절을 보았다면, 인간냄새가 나는 홍준표 원내대표에게서 작으나마 희망을 본다. 지도자가 우리 옆에 서있다는 믿음을 주면 된다. 그러면 우리 국민은 하나가 될 수 있다. 한번 감동하면 금붙이도 들고 나오는 국민 아닌가.
너무도 상식적인 이 길은 왜 못 가는가. 어려운 사람들에 좀 더 애정을 쏟고,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땀과 노고를 호소하는 그런 지도력은 발휘할 수 없는지. 나라를 끌어가는 이들에 한마디 하고싶다. “홍준표만 같아라”고.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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