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선어록(禪語錄)을 읽고 불교를 공부했지만 아직도 출발선상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소설과 산문을 써온 소설가 정찬주(55)씨는 대학시절 조사 스님들의 어록을 처음 접하고 나서 선어록을 꾸준히 읽어왔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그려오던 선(禪)의 현장을 다녀와 10대 선사들의 삶과 자취를 적은 <뜰앞의 잣나무> (미들하우스 발행)를 펴냈다. 뜰앞의>
"현장에 가 보니 활자로 볼 때와 달리 참으로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정씨가 다녀온 곳은 중국 선종을 개창한 초조(初祖) 달마 대사가 머물렀던 소림사와 이조(二祖) 혜가가 주석했던 이조암을 비롯, 삼조 승찬, 사조 도신, 오조 홍인, 육조 혜능 대사와 마조 도일, 운문 문언, 조주 종심, 임제 의현 선사가 선풍을 떨쳤던 선찰(禪刹)들이다. 6년 전 처음으로 중국의 선종 사찰들을 찾았던 정씨는 지난해와 올해 다시 방문해 모두 세 차례 답사했다.
불교소설 쓰기를 자신의 '구도 역정'이라고 표현한 정씨는 이 책을 "선어록을 공부해온 결실"이라고 말했다. "달마 대사가 무심(無心)을 말한 것을 비롯해 여러 선사들이 각자 신심(信心), 수심(守心), 평상심(平常心) 등을 말하는데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단어가 달라졌지만 결국에는 같은 내용입니다."
10대 선사가 각자 다른 키워드를 내세웠지만 모두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선은 자기를 찾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이며, 그 과정이 가장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정씨의 말이다. 책에는 선사들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일화들이 현장 분위기와 어우러져 묘사돼있다.
정씨는 특히 선과 차(茶)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했다. "9년 면벽을 하면서 졸음이 오면 눈썹을 뜯어 던졌더니 차나무가 됐다는 달마 대사의 전설로부터 거의 모든 선사들에게 차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육조 혜능 대사는 직접 차를 만들었는데, 정씨는 요즘도 조계산에서 나는 '육조첨차'가 특산품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을 차시장에서 목격했다.
선의 역사와 차의 역사는 병행했다고 정씨는 설명했다. "사조 도신 대사 이후 농선쌍수(農禪雙修)의 기풍이 정착되고 선원에서 차를 직접 재배하면서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ㆍ끽다거)'처럼 화두에 차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운문 선사의 <운문록> 에는 스님이 직접 차를 따는 장면이 나온다. 운문 선사가 학인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차를 따고 옵니다." 선사는 말했다. "달마는 몇 개나 땄느냐." 운문록>
정씨는 답사 도중 소림사 탑림(塔林)에서 우리나라 출신의 고승으로 추정되는 스님의 자취를 발견하기도 했다.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묘탑 240여기 가운데 '원적수좌(圓寂首座) 김공무용지탑(金公無用之塔)'이라는 묘비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삼조 승찬 대사가 주석해던 천주산 삼조사 주지로부터 "중국 스님이라면 법명 앞에 석(釋)씨가 붙지만 외국 출신의 스님은 중국 스님과 구분하기 위해 속성을 붙인다, 한국 스님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탑을 건립한 시기가 명나라 영종 10년(1445)년 3월이니, 조선 세종 27년이다.
"내가 있는 곳이 달마동굴이 되고 이조암이 되고 삼조사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달마, 혜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때 내가 있는 자리가 바로 선사들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가 되는 것이지요. 중국에 있는 달마동굴, 이조암을 그리워하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순례 끝에 얻은 작은 깨달음이라고 했다.
정씨는 순례기를 쓴 후 축서사 선원장 무여스님 등을 찾아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서른살 무렵 문경 봉암사에서 서암 스님으로부터 '현전일념(現前一念)하라'는 말을 들은 뒤 이를 화두로 삼아왔다는 그는 '화두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선의 고향을 다시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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