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07년 핵무기 개발 의혹을 이유로 경제제재에 나서자 "저들이 제재 결의안을 10개 이상 내놓아도 이란의 정치와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세계 2위의 석유 매장국으로 유엔이 어떤 제재를 취하더라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석유를 판 돈으로 중동에 영향력을 확장하며 미국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등 두려움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두려움에 빠져있다. 바로 유가 하락 때문이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유가 상승에 힘입어 미국과 맞서던 석유 부국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와 이들 나라의 지도자들이 유가 하락으로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이 가운데 이란은 풍부한 석유 매장량과 유가 상승에 힘입어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또 유가 상승에 맞춰 지난 3년간 정부 지출을 89.6%나 늘리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7월 147달러까지 솟았던 유가가 21일 현재 70.89달러로 반토막 나면서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 등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다. 유가 하락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면 아흐마디네자드도 내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반미의 선봉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마냥 큰소리를 칠 입장이 못 된다. 차베스는 러시아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러시아제 무기 구매 협상을 하는 등 최근 적극적으로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내년에는 재정 지출을 23% 늘려 사회복지시스템을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유가가 계속 하락하면 무기 구매나 사회복지 재원 마련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고소하게' 바라보던 차베스는 "외환보유액이 400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유가가 80~90달러만 유지하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하지만 베네수엘라 역시 물가 급등 등 외환 위기와 유가 하락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쿠바 등에 대한 지원도 줄여야 할 판이어서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는 1,900억달러 규모의 석유안정기금을 조성한 덕에 유가 하락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 하지만 내년 우랄산 원유가 50달러 선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JP모건, 골드만삭스가 발표하는 등 러시아라고 어려움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최근 수년동안 국내외에서 정치적 파워를 과시했다. 그가 그루지야 침공 당시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를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러시아 제재를 포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푸틴이 원유 등 자원을 바탕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던 만큼,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그의 위세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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