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준비하느라 바깥 보행연습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 걸음마 떼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
21일 발표된 50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에 시각장애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최영(27)씨. 하루 12시간 이상 컴퓨터 음성파일로 법서를 들으며 공부에 매진한 끝에 '심안(心眼)의 기적'을 일궈낸 그는 법무부의 합격 통지를 받은 뒤 그 간의 역경을 털어버리듯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었다.
최씨가 애초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 출신으로 2남 중 장남인 최씨는 고교 시절까지도 시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안경을 끼고 생활에 지장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시련이 찾아온 것은 고교 3학년 때. 시력이 갑자기 나빠져 안과를 찾은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잠시 깊은 실의에 빠졌던 그는 그러나 한 차례 실패한 끝에 2000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고교 때부터 법조인을 꿈꿨던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러나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부터는 사실상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법서를 읽는 것은 물론 혼자 힘으로는 집 밖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였어요."
법조인의 꿈을 접으려던 무렵, 좌우 10도 밖에 안 되는 최씨의 좁은 시야에 한 줄기 빛이 비치었다. 한 복지재단에서 그를 돕겠다고 나선 것. 시험에 필요한 교재를 음성 변환이 가능한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음성 교재를 듣는 방식으로는 공부시간이 남들보다 서너 배는 더 걸렸다. 이런 최씨에게 도움을 준 것은 친구들이었다. 2004년 법대에 입학한 시각장애인 친구는 음성 파일을 들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고, 또 다른 친구는 외출과 식사 시간에 항상 최씨를 도와줬다.
그 역시 난데없이 닥친 불운에 맞서 스스로 길을 열었다. 후천적 시력 상실 탓에 점자를 모르는 그에게 점자시험지만으로 응시가 가능한 사법시험 방식은 또 다른 벽이었다. 그는 2006년 1월 법무부에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험방식을 사법시험에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법무부는 그 해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장착한 컴퓨터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했다.
이 때부터 최씨는 시험 공부에만 전력 투구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밤 12시 잠들기 전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항상 음성 파일을 들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그는 2007년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최씨는 변호사가 되어 시각장애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사회적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듯했다. "잘 모르겠어요. 한국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 미국에는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많다고 하던데…."
한편 법무부가 발표한 2차 시험합격자는 모두 1,005명으로, 여성이 384명(38.2%)을 차지해 사법시험 사상 가장 많은 여성 합격자가 나왔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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