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세금으로 혜택 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한 채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은행 해외 차입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관련,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며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옛날처럼 받을 임금을 다 받다가 문제가 생기면 정부지원을 받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말해 은행의 자구 노력을 촉구했다.
시중은행들은 부랴부랴 임원 연봉을 깎겠다고 선언하고 비용 절감과 해외 자산 매각 등 자구노력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내심으론 정부의 지급보증이 글로벌 자금경색에 따른 외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주는 차원인데 마치 은행의 잘못에 따른 부실을 메워주는 것처럼 매도 당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선 국민은행은 강정원 행장을 비롯한 본부장급 이상의 임원 임금을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5% 반납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 은행 점포 수를 9월 말 현재 1,222개 수준에서 더 늘리지 않기로 했다.
하나금융지주도 하나은행을 포함한 전 계열사 임원 130명의 임금 10%를 반납하기로 했고, 기업은행도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 연봉을 15% 넘게 삭감키로 했다.
신한은행도 임원 임금을 동결 혹은 삭감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경영 합리화 계획을 마련, 22일 발표키로 했다. 비용 절감은 물론 점포 전략도 재검토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해외 점포가 보유 중인 3,300만달러 어치의 유가증권도 순매각했다.
우리은행도 최근 2,440만달러 어치의 외화 유가증권을 매각한 데 이어 외화자산 매각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중소기업 대출 만기 연장, 분할상환대출 납입유예 조치 등에 더해 중소기업지원방안을 더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은행 외화채무 지급보증과 관련,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정부와 언론에서 부각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내심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외환위기나 이후 대우 사태 등 기업의 부실채권 때문에 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때와는 달리, 이번 지급보증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 간 '거래 상대방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국제 시장에서 막혀버린 외화자금 조달 길을 뚫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급보증 해준 외채를 나중에 갚지 못할 정도로 은행 사정이 나쁜 것도 아니고, 정부도 은행으로부터 보증료를 받기로 했는데도 마치 부실 은행 살리기에 혈세가 투입되는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
그 동안 은행들이 저리에 외화를 차입해 국내에서 고리에 부동산담보대출이나 기업대출을 해 오며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해 왔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과거 외환위기 때와 달리 현재 은행 외화자금 대부분은 원화대출이 아니라 수출 기업의 환어음 매입 등 외화대출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노조는 더 경악된 반응이다. 현재 사측과 임금 협상을 진행 중인 금융 노조는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성명을 내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위헌적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은행 임직원들이 일반 기업들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 데 대해 세간의 눈초리가 싸늘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특히 경기 침체로 한계기업의 부도 위험이 급증하면서 은행이 대출을 자제하는 데 대해 기업들의 불만도 크게 높아져 있는 상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자금을 실물 부문에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혈관 역할인 만큼,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만이 도덕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은행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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