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인수동에서 보증금 3,000만원 짜리 연립주택 지하 전세방에 살고 있는 하모(40ㆍ여)씨의 쌍둥이 두 아들(초등학교 4학년)은 각각 심장판막증과 태어날 때부터 항문이 없는 대장질환을 앓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역시 하씨처럼 입천장이 갈라지는 선천성 구개파열로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월 소득이라고는 결핵을 앓고 있는 일용직 남편이 건설 자재를 운반해 벌어오는 80만~120만원이 전부. 하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도 해봤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는 동사무소 직원의 대답만 듣고 와야 했다. 남편 소유의 트럭까지 소득으로 환산하면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웃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동대문구 장안동에 사는 신모(60)씨 가족의 월 소득은 50여 만원. 신씨는 허리디스크로 2년째 일을 못하고 있고, 부인(50)과 큰 아들(28)은 둘 다 지체 장애인이다. 둘째 아들(26)이 일용직 일을 하고 있지만 고정 수입은 없다.
이들 네 식구가 받는 지원금은 사회복지사가 주선해준 결연후원금 월 5만원 뿐. 9,000만원짜리 연립 지하 한 칸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도 못 받고 있다. "집 팔아 빚 4,000만원 갚고 나면, 네 식구 살 전셋집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경기침체로 빈곤층의 생계난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들을 구제할 사회안전망은 심각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자가 536만 명(11.1%, 2006년 기준)에 달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는 국민은 현재 154만 명(3.2%)에 불과하다.
382만 명의 빈곤층은 각자 알아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금액만큼 정부가 보전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 빈곤구제를 책임지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그러나 구멍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구조적인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급자 선정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까다롭다. 정부는 현금소득과 함께 전세보증금과 같은 재산도 합쳐 수급 신청 가구의 소득을 평가하고 있는데, 대도시에 사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보면 소득이 전혀 없어도 전세보증금이나 소유하고 있는 집의 가격이 6,835만원을 넘으면 수급대상이 되지 못한다.
앞서 신씨의 경우 월 소득이 50만원밖에 되지 않지만, 9,000만원짜리 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급대상이 되지 못한 것. 집을 팔거나, 더 작은 전세로 옮겨 생활비를 마련하라는 얘기다.
또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라 해도 승용차나 화물자동차 역시 소득으로 환산된다. 하씨의 경우 현금소득(80만~120만원)은 5인 최저생계비(148만원)에 미달하지만, 트럭을 포함하면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을 단 한푼도 못 받고 있다.
정부는 경기침체로 최저생계비 이하 저소득층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수급 대상이 된다며 사회안전망의 자동조절기능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 동안 최저생계비 인상폭 자체가 제한적이었을 뿐 아니라, 까다로운 수급자 선정기준 때문에 사실상 사회안전망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기침체가 가속화할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세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 임금 근로자들은 고용보험이라도 있지만 이들에겐 실업급여도, 취업 재교육의 기회도 없다.
재기와는 거리가 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부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지원센터가 임금 근로자뿐 아니라 자영업자 지원도 통합해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는 정부의 관심 부재를 가장 우려했다. 당장 내년 예산만 해도 정부는 복지지출이 올해보다 9.0% 늘어나 총지출증가율(6.5%)을 웃돈다고 밝히고 있지만 국민연금 급여지출, 건강보험 재정부담 등 기존 제도 확대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빼면 새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사업은 미미하다.
또 정부는 기초생활비 부정수급자 단속을 통해 사각지대를 메운다는 계획이지만, 그 금액이 극히 적을 뿐더러 수급가구의 소득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이들을 꼭 부정 수급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의 한 사회복지관 관장은 "부랑인 시설 개ㆍ보수 사업 연기, 보건소의 저소득층 미숙아 재활 예산 부족분의 민간 조달, 저소득층 이동목욕서비스 혜택의 감소 등 작지만 꼭 필요한 복지 사업들이 새 정부 들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안 그래도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취약한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와 향후 수년간 경기 악화로 재정수입이 줄게 된다면 자칫 저소득층의 재기불능, 빈곤층의 급격한 극빈곤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 이중으로 버림받는 독거노인들
고령화와 가족해체 등으로 노인의 빈곤화가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07년 현재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노인의 18.4%인 88만명. 통계청은 독거노인 숫자가 2010년 102만명, 2020년에는 15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의 월 평균 소득은 26만6.000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노인의 평균소득(48만6,000원)이나 1인 가구 최저생계비(46만3,000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당수 독거노인들은 까다로운 부양의무자 규정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 보증금 147만원, 월세 5만원짜리 방 한 칸에 혼자 살고 김모(73세)씨. 6ㆍ25 참전수당 8만원, 결연후원금 5만원 등 매달 13만원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씨는 그러나 수년째 연락조차 않고 있는 아들에게 폐가 될까 기초생활보장 신청을 포기했다. 부양능력이 되는 자녀가 있는 노인이 기초생활비를 신청해 받을 경우, 나중에 정부는 그 자녀에게 부양비를 청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녀들한테도, 국가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빈곤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자녀로부터 받는 지원을 포함해 소득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고 해서, 독거노인들이 모두 기초생활보장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4인 가족일 경우 소득이 225만원(4인 최저생계비 + 1인 최저생계비)이 넘거나, 전세 보증금 등 자녀 재산이 1억1,200만원(대도시 기준)이 넘으면 독거노인은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없다.
자녀가 형편이 어려워 극히 소액만 지원한다 해도 독거노인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서울 한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실제 자녀들의 부양 여부를 가지고 기초생활비 지급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판단기준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도입한 기초노령연금도 허점투성이다. 대부분 저소득 노인들에 대한 지원금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거나 오히려 줄기도 했다. 정부는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60%에 대해 월 8만4,000원씩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을 받던 37만 명 노인들의 경우 기초노령연금이 소득으로 잡히면서, 기초생활비에서 그만큼의 액수가 깎이게 된 것.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기초노령연금을 시행하면서, 올해 만 65세가 되는 노인들부터 경로연금 5만원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경로연금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기초생활수급자들은 현재 경로연금을 받고 있는 66세 이상 노인들에 비해 5만원씩 적게 받게 됐다.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손병돈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의 30%가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빈곤문제의 핵심은 '빈곤의 노인화'"라며 "기초노령연금액을 높이고 수급 대상을 확대해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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