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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뜨락] ④ 시인 안도현 안동·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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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뜨락] ④ 시인 안도현 안동·예천

입력
2008.10.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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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고향'이라는 말은 사어(死語)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점점 조상의 뼈가 묻힌 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할 일이 드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이 말을 우리는 오래된 낡은 시집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사회학자들은 대한민국에 사는 인간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할 것이다. 고향의 기억을 심장 속에 품고 있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물론 나는 전자에 속한다.

1981년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의 제목이 '낙동강'이었다. 그때 나는 스무살이었다. '아아 나는 아버지가 모랫벌에 찍어놓은/ 발자국이었다, 홀로 서서 생각했을 때/ 내 눈물 웅얼웅얼 모두 모여 흐르는/ 낙동강/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고 썼다. 그때는 정말 스무살에게도 고향이 있었나 보다. 이마가 문득 뜨거워진다.

전북 전주에서 살고 있는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예천 회룡포에서 만났다. 회룡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하회마을처럼 한 바퀴 크게 굽이쳐 흐르는 곳이다. 물이 맑고 모래가 곱다.

내가 태어난 곳도 내성천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마을이다. 소싯적에 '갱빈('강변'의 변형일 것이다)이라 부르던 그 백사장에 자주 나가 놀았다. 검정고무신으로 자동차놀이를 했고, 물장구를 치면서 고기떼를 좇거나 모래무덤 속에 들어가 얼굴을 까맣게 태웠다.

나는 예천 큰집이나 외갓집의 툇마루 끝에 앉아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가 아주 좋았다. 그 마루 끝에 앉아 있으면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곤 하였다. 굼벵이는 왜 썩은 초가지붕 속에 웅크리고 사는지, 매미는 왜 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어대는지, 뒷산에 나는 버섯은 왜 무서운 독이 들어 있는 것일수록 화려한 빛깔을 띠는지….

장마철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듣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빗물이 마당에 크고 작은 왕관 모양을 만들며 떨어지는 것을 쪼그리고 앉아 살폈다. 그리고 빗물이 고랑을 이루며 흘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더 멀리 가서는 바다가 되는 것을 상상하는 일도 나 혼자 오도카니 시간을 보낼 때였다.

그때 내 귓가에 닿았던 소리와 내 코로 들어왔던 냄새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이 주는 '느낌'을 즐기지 못하는 무감각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내 시의 원천이 어린 시절의 사소한 기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깜짝깜짝 놀라며 느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외갓집의 벽장이 그렇다. 벽장 속에는 홍시, 곶감, 사탕, 꿀, 조청 등 철없는 것의 입맛을 당기는 것들이 무진장하였다.

그 벽장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키워주던 선생님이었다. 일제 때, 혹은 더 이전에 쓰던 무수한 동전들과 사진첩과 한자 투성이의 누런 서류들은 나에게 나 이전의 역사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그리하여 나도 그 역사의 줄기 끝에 맺힌 작은 꽃봉오리임을 일찍이 가르쳐 주었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사람이 입으로 먹는 것, 내가 과거에 먹은 것, 씹은 것, 마신 것, 뱉은 것을 비롯해 음식이 환기하는 기억과 풍경을 불러내는 일도 시인의 몫이므로. '예천 태평추'라는 시는 '태평추'라는 말이 나한테 심어 놓은 기억을 쫓아가는 시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 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세상은 줄곧 탕탕평평(蕩蕩平平)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탕평해야 태평인 것인데, 세상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탕평채도 태평추도 먹어보지 못하고 나는 젊은 날을 떠나보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있다. 그 유명한 곳을 나는 서른을 훨씬 넘긴 후에 처음 찾아갔다. 병산서원 만대루를 첫번째로 올랐을 때 나는 가만히 앉아 건너편 절벽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황홀했다.

병산서원 만대루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와이셔츠 단추 다섯 개를 풀었다. '내가 그 동안 이 세상에 한 일이 있다면/ 소낙비같이 허둥대며 뛰어다닌 일/ 그리하여 세상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 튀게 한 일'( 시 '마흔 살'에서)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기행의 마지막 여정은 풍산초등학교였다. '운동장 중간에 일본놈이 심어놓고 갔다는/ 성적표만한 낙엽들을 내뱉던 플라타너스 세 그루' 중 둘은 베어졌고 한 그루만 묵묵히 남아 있었다. 나는 한 아름도 넘는 나무 밑동을 어루만지며 거기에 내 어릴 적의 손톱자국이 있나 없나 살펴보았다. 아, 있었다. 수많은 어린 '나'가 새겨놓은 기억들이.

■ 안동이 배출한 문인들

북부경북 문화권의 중심지인 경북 안동의 문화와 기질은 '선비정신'이라는 말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내력있는 종갓집마다 성대하게 치러지는 불천위(불遷位) 제사(높은 학식이 있거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조상에 대한 제사), 유서깊은 반가의 고택 등이 상징하는 유교 전통의 뿌리와 같은 것이다.

안동의 선비정신은 식민지시기 항일의식으로 표출됐다. 이 지역이 배출한 수많은 문인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는 그래서 시인 이육사(1904~1904)다. 일제시기 문인 중 거의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한 인물이었던 이육사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강렬한 저항의식을 드러낸다.

가령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광야') 같은 구절은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힘있는 남성성이 느껴진다.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안동은 유인식, 김창숙, 김동삼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라며 "이육사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지역의 정서를 문학과 삶으로 함께 보여준 시인"이라고 말했다.

유안진(67) 시인은 하회탈춤, 차전놀이 등 전국 어느 곳과도 견주기 힘들 정도로 잘 전승돼 있는 이 지역의 민속문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시는 물론, 안동지역의 민속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다시 우는 새> (1992), 안동의 인습적 유교전통과 근대지향적인 지역 여성들의 갈등을 그린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1990) 등도 발표했다.

김명수(63) 시인은 농토 부족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안동 민중들의 근면성, 척박한 생존조건 속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결기, 유난히 많았던 사회주의 운동가들로 인한 전쟁 이후 지역민들의 내적인 상처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이다.

'그 봄에도 삼밭은 어우러지고/ 어매는 하루 종일 삼을 삼았다/ 남정네 하나 없는 빈 고향 집/ 밤을 새며 어매는 삼배를 짰다/…그 봄에도 삼밭은 어우러지고/ 전선에서 설운 소식 들리어 왔다/ 우리 어매 우리 할매 통곡하던 날/ 어매 짜던 안동포 허리 무질러/ 아배의 혼백을 산에 묻었다'. 그의 1983년작 시 '안동포'는 한국전쟁 직후의 안동을 배경으로 했다.

논농사보다 밭농사를 주로 했던 가난한 민중들의 고단한 노동현실, 사상 갈등으로 인한 지역민들의 내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성탄제'의 시인 김종길(81), 문학평론가 김용직(79), 소설가 남상순(45) 권여선(43), 시인 안도현(47ㆍ예천) 등도 안동문화권이 배출한 문인들이다.

안동 출신의 시인 안상학(46)씨는 "'안동 답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면 굽힘없이 우직하고 결곧게 들어가는 것이 안동 사람의 삶의 태도"라며 "큰 뜻을 위해 사소한 것을 버리고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이들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이들의 문학세계에 투영됐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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