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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의 저소득층 공동주택 ‘달 뜨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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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의 저소득층 공동주택 ‘달 뜨는 집’

입력
2008.10.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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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영암읍 역리 330번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은 아담한 단층 집 한 채. 앞마당에 정성스레 심은 소나무, 철쭉, 백일홍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영암군이 홀로 사는 노인과 집 없는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지어준 공동주택 '달 뜨는 집' 2호다. 지난달 9일 문을 연 이 곳에는 독거 노인과 장애인 등 6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다.

"너, 무, 좋, 아, 요. 여기가 내, 집, 이에요."

20일 오전 '달 뜨는 집'을 찾은 기자에게 입주민 유봉원(58ㆍ언어장애)씨는 자신의 집 앞에 붙은 문패를 가리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집들이 손님을 맞듯, 침실과 주방, 세면실 등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구당 32㎡, 10평 남짓한 공간은 옷장과 신발장, 가스보일러 등 살림살이가 모두 깔끔하게 갖춰져 신혼살림집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유씨는 이곳에 오기 전 읍내 시장의 쓰레기더미 옆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쓰레기 악취에 절은 곳이나마 몸 누이고 살던 집이 기울어 오갈 데가 없어졌던 유씨는 '달 뜨는 집'으로 옮기며 난생 처음 자신의 이름을 문 앞에 내건 보금자리를 갖게 됐다.

같은 크기의 6가구가 나란히 이어진 공동주택 한 가운데는 쉼터가 자리잡고 있다. 앞뒤가 툭 트인 쉼터에 앉아 있자니 월출산 산새들 소리가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에 실려온다. 쉼터 한 켠을 장식한 동양화 속 풍경이 그대로 그림 속을 빠져 나온 듯 하다.

일찍 아침 밥 지어먹고 인근 재활치료센터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왔다는 김쌍례(65) 할머니는 "살기 좋고, 마음 편하고, 하루하루가 즐겁다"면서 "이곳이 내 마지막 보금자리이고, 여기에서 눈을 감고 싶다"고 말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김 할머니는 '불편한 것 없으시냐'는 물음에 "친구도 있고, 입구까지 버스도 다니고… 불편한 것 하나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입주민 가운데 최연소인 사성훈(44)ㆍ마르지(34)씨 부부도 딱한 사연을 안고 이곳에 왔다. 8년 전 필리핀에서 시집 온 마르지씨는 남편 사씨가 고기를 잡다 다쳐 운신을 못하게 된 데다 시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졸지에 '가장'이 됐다. 현재 군에서 운영하는 영어타운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마르지씨와 가족은 이곳에서 몸 불편한 이웃들 돌보는 일을 맡고 있다.

가끔 어르신들을 위해 필리핀 전통음식을 만들기도 하는 마르지씨는 "남의 눈치 안보고 고향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어 신난다"고 했다. 베란다를 제 방으로 정해 여기서 잠을 잔다는 아들 유신(9)군은 "내 방도 있고요, 이제 자꾸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돼 너무 좋아요"라고 자랑했다.

이날 마침 자원봉사자들이 '달 뜨는 집'을 찾았다. 이들은 1주일에 세 번 이곳을 찾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위해 청소도 해주고 밑반찬도 만들어 주고 말벗도 되어준다. 김옥순(77ㆍ여)씨는 "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한 것은 이렇게 다니면서 봉사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기 때문"이라면서 "더 나이 들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암군이 영암지역자활센터와 손잡고 '사랑의 집 짓기' 사업에 나선 것은 2006년. 군서면 월곡리의 1호 '달 뜨는 집'에는 4가구가입주해 있다. 군은 올해 말까지 미암면에 4가구 3호 주택을 짓고 내년부터 각 면의 수요를 파악해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영암군에서 집터와 건축비를 부담하고, 영암자활센터에서 자원봉사 등 형태로 운영을 돕는 이 사업은 성공적인 민관협동 복지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입소문이 외지로도 퍼져나가 현재 군민 40여명 외에 전국에서 20~30명이 입주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최근에는 경기 양평에 사는 권모(62)씨가 김일태 영암군수에게 편지를 보내 "암 투병 중인데 전세금 1,000만원을 기부할 테니 '달 뜨는 집'에서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군은 권씨가 주소를 옮겨 '달 뜨는 집'에 입주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또 강원 횡성군과 경기 용인시에서 이 사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는 등 지자체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암=박경우 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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