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학년도 대입 수시 2학기모집 논술고사가 대학별로 한창 실시되고 있다. 주요 대학들이 공개한 논술 문항들을 보면 최근 몇 년간 실험 단계를 거친 통합형 논술이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 논술가이드라인 폐지로 이 같은 출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형 논술은 고전 중심의 제시문을 주고 장문의 답안을 요구했던 과거와 달리 주제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주제를 토대로 창의적 문제해결 과정을 물으려는 대학들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높아진 난도 탓에 문항 파악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출 문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지난해 주요 대학들의 수시ㆍ정시 논술 기출문제와 올해 논술 모의시험의 세부 문항을 분석해 본다.
■ 경제ㆍ문화 관련 주제 빈도 높다
최근 논술고사 문제들은 경제 관련 주제의 출제 빈도가 가장 높았다. 기업, 합리적 의사결정, 노동ㆍ실업, 빈곤ㆍ양극화 등 파생 가능한 출제 범위도 넓다. 이는 현대사회의 병폐나 주요 문제가 경제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는 탓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주제를 직접 언급하기 보다 경제이론의 기본 개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의 시장,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다루는 식이다. 가령 최근 불거진 미국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개념을 제시하고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생각토록 하는 문제를 대학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문화 관련 주제 역시 빈번하게 등장하는 영역이다. 예술을 포함해 문화는 전통적으로 대입 논술이 선호하는 영역인데, 문화적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속도ㆍ다양성 새로운 논술 이슈로 떠올라
'합리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주제들은 통합형 논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대학들은 논술고사를 통해 논리력 뿐만아니라 수험생의 문제해결 능력을 알고 싶어 한다. 여러 상황을 던져주고 어떤 해결책이 타당한지,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경제나 사회ㆍ문화교과서에서 다룬 내용이 출제되는 경우가 많으며 게임이론도 제시문으로 자주 차용된다.
수험생들이 특별히 관심을 둬야 할 주제들로는 속도, 다양성, 가족, 사회적 자본 등이 있다. 속도 관련 주제는 2007년 서울대 정시 논술고사에 첫 선을 보인 이후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속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 빠름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을 진단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세계화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다양성은 다문화 가정이 확산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포착해 낼 수 있다. 또 가족 관련 주제는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자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점에서 대학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논술 주제들이다.
■ 요약ㆍ비교형 문제의 기초를 확실히 다져라
통합형 논술의 도입은 문제 유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단일 문제에서 여러 질문이 딸린 세트형 문항으로 출제 형식이 바뀐 이후 요약형(17.8%)과 비교분석형(22.1%)이 다수를 차지했다. 두 유형은 제시문의 정확한 독해 여부와 정식화 능력을 묻는 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요약형은 제시문의 내용을 주제가 잘 드러나게 함축하도록 한 것이며, 비교분석형은 여러 제시문의 핵심 논점 혹은 여러 개념을 비교하거나 공통점, 차이점 등을 찾아 정리하는 문제이다. 최소 3문항으로 구성된 세트형 문항에 포함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학들은 두 유형의 수행 능력을 통해 이후 문항의 채점 여부를 가리는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요약ㆍ비교형 문항은 논술의 기본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반복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통계자료나 그래프에 대한 해석 능력을 평가하는 자료분석형은 최근 들어 출제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에 대해 논하라"는 식의 의견진술형 문제는 얼마 전까지 주류를 이뤘으나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대신 대안을 제시하거나 특정 상황을 비판하고 논박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서술을 요구한다. 김인규 유레카논술 상임연구원은 "무작정 자신의 의견을 써 내려가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각 논술 유형의 특성에 따라 요구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유레카 논술
■ 동국·경희·숙명 2학기 수시 논술
2009학년도 수시 2학?전형이 한창인 대학들의 논술고사 문제들을 보면 통합형 논술의 경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18일 수시 2학기 논술고사를 실시한 동국대는 비판적 읽기와 정확한 독해 능력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복합형 질문 방식을 택했고, 제시문도 분량이 많고 비교적 까다로웠다.
인문계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병리현상들에 주목했다. 울리히 벡의 〈위험한 사회〉를 인용, 필자가 주장하는 사안에 대해 논리적 이해를 요구했다. 주식시장의 원론적 개념을 제시하고 특정한 상황을 가정, 개념의 적용을 유도하는 문제도 나왔다.
자연계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멜라민 파동'을 과학적 측면에서 파악하고, 사건이 불거진 원인에 대해 사고력을 이끌어 내도록 했다.
18~19일 이틀간 논술고사를 치른 경희대도 기본 개념의 이해와 분석능력, 창의적 사고와 논리적 추론 능력 등 통합형 논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권력 속성을 강제, 유인, 매력 등의 개념과 연관지어 설명하게 했다. 제시문을 통해 개념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한다면 논지의 일관성을 갖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자연계 논술은 통합교과적 목표를 지향한 흔적이 역력했다. 인간의 보행을 진자운동에 빗대거나 체내에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를 화학적 분자구조를 통해 입증하도록 하는 등 과학적 개념ㆍ원리의 통합적 이해를 요구했다.
앞서 17일 논술 시험을 실시한 숙명여대는 자료제시형과 통합논술형으로 총 5문항(공통 3문항)을 구성했다. 여러 형태로 된 자료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상황과 조건에 맞춰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문제해결력이 평가의 초점이었다.
경희대 관계자는 "올해 논술고사는 고교 교육과정의 출제 의도 외에 응시생들의 이해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논제와 관련해 논리적 글 구성 뿐만 아니라 논거의 제시, 분석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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