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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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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딸에게

입력
2008.10.2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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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가을바람 불어

허공의 빈 나뭇가지처럼 아빠는

울고 있다만 딸아

너는 무심히 예복을 고르고만 있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붙들지 못해서 우는가 보다.

강변의 갈대는 흐르는 물을,

언덕의 풀잎은

스치는 바람을 붙들지 못해

우는 것, 그러나

뿌리침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찌 바다에 이를 수 있었겠느냐.

붙들려 매어 있는 것치고

썩지 않는 것이란 없단다.

안간힘 써 뽑히지 않는 무는

제자리에서 썩지만

스스로 뿌리치고 땅에 떨어지는 열매는

언 땅에서도 새싹을 틔우지 않더나.

막막한 지상으로 홀로 너를 보내는 날,

아빠는 문득 뒤곁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뭇잎 하나 떨어질 때 제 살점을 오려내는 신음 소리가 들린다. 열매 하나 떨어질 때 쿵, 가슴이 패는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 가지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가을 나무는 환부 투성이다. 금이야 옥이야 어디 다치지나 않을까 애지중지 키워온 열매를 떠나보내야 할 시점에 이르렀으니 그 속이 오죽하랴. 아비의 마음을 몰라주고 예복을 고르는 딸이 야속도 하지만, '붙들려 매어 있는 것치고/ 썩지 않는 것이란 없'으니,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위대한 결별이 필요한 때다. 딸아, 그리하여 나는 너를 떠나보낸다.

나뭇잎이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말간 진물이 흘러나온다. 이 진물이 쓰리디 쓰린 환부를 감싸안고, 목마른 잎벌레들과 곤충들을 불러들여 목을 축이게 한다. 일테면, 상처가 샘물인 것이다. 아릿아릿 환하게 아파오는 상처의 샘물로 우뚝한 가을 나무를 보라. 이 욱신거리는 사랑을 나무의 열매 역시 품게 될 것이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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