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가 한반도를 휘몰아치는 가운데 직불금 스캔들이 터졌다. 정부와 여당이 특히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쌀 시장 개방으로 피해를 입을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도입된 보조금을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이 타먹었다는 사실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제도적 맹점이나 부당수령 문제가 이미 지난 정부 때 생긴 일이라며 감사원의 감사결과 은폐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 논란 등 의혹의 꼬리에 기대를 걸어 보지만 들끓는 농심은 달랠 길 없다. IMF사태 유령들이 돌아왔다고 하는 판에 이런 악재가 터지니 MB, 운 없어도 너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직불금 파문은 기강붕괴 단면
직불금 파문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흔들려 왔던 정부의 기강을 드러내 준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부정부패나 공직비리에 해당하는 경우는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더라도 갖가지 유형의 기강 해이 또는 문란 현상이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단연 줄서기나 과잉충성, 암투 등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꼽히지만 그것 말고도 항시 이런 저런 쟁점과 이해관계를 둘러싼 균열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기관 간 권한 다툼과 그로 인한 국정의 혼란ㆍ지체는 고질적인 기강 문란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 사례였다.
임기 내내 지난 정부를 괴롭혔고 또 정부의 기능 부전을 초래했던 원인도 부처 간, 기관 간 권한갈등 문제였다. 정보화, 전자정부, ICT 산업정책 등 곳곳에서 행자부와 정통부, 산자부와 문광부 등 서로 얽히고 설켜 옥신각신하는 통에 정부통합전산센터의 설립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정보기술아키텍처의 도입 문제 등 주요 정책이나 과제가 한 동안 정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들 쟁점을 둘러싼 갈등은 참여정부가 그렇게 공들였던 공식적 조정메커니즘으로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조정을 해도 실무 수준에서 다시 또 대립과 갈등을 빚는, 말하자면 '영이 서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정통부의 기능이 방송통신위원회, 지경부, 행안부, 문광부로 분해된 배경도 그런 맥락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정부가 돌아가는 걸 보니 그런 고질적 현상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IT 컨트롤타워 논란이 그렇고 국가정보화 총괄기능을 둘러싼 기재부와 방통위 등의 갈등, 정보통신진흥기금과 정보통신 지원기관들의 통폐합 문제 등이 그러하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대통령이 정보화추진실무위원회에 정보화정책과 추진체계 재설계 임무를 맡겼는데도 재정ㆍ예산의 주무 부처임을 내세워 정보화 관련 기능까지도 흡수하려는 욕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방통위는 아직도 정통부의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지경부 역시 정부조직법이 정한 정보통신산업 관할을 토대로 '산업' 자만 나와도 쌍심지를 세운다. 아직은 내연(內燃) 수준이지만 곧 밖으로도 불거질 부처 간 권한다툼을 누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그로 인해 정보화정책이 또 얼마나 지체될지 걱정이 깊다.
물론 어느 정도의 내부경쟁은 조직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사불란하게 한 몸으로 움직여야 기강이 서 있다고 평가할 일은 아니다. 공공정책은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어느 정도 논란과 갈등을 거쳐야 올바른 의사결정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고 또 그것이 정상이다.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 리더십
그러나 정부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에 관한 소관이 불분명한 경우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로 한창 일해도 시원치 않은 터에 서로 입씨름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사자 스스로 부처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과연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최선의 길인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은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다. 우선 청와대 수석들의 소관부터 다시금 조율할 필요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러고 나서 권한 조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내키지 않아 억지로 시늉만 하는 일은 없는지 엄중히 살펴야 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