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사람들은 늘 옛 이야기를 좇으며 살고 있다. 전시와 교육, 문화행사라는 다양한 업무들도 모두 다 옛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제법 나를 아는 분들은 "요즘은 무슨 이야기를 좇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궁예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면, 대체적으로 "아, 그래요!"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궁예가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인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조금 더 진전되면 "그런데 왜 하필이면 궁예입니까?"라는 물음이 이어지게 되고, 여러 가지 추가 설명을 해야만 겨우 수긍의 눈빛을 확인하게 된다.
궁예는 강원도의 영서 남ㆍ북부, 영동지역을 주요 배경으로 9~10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사실 그는 경주에 수도를 둔 신라 왕실의 일원이었고, 한동안 개경에 수도를 둔 왕이었기 때문에 강원도와의 관련성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는 영서 남부지역에 군사적 기반을 마련한 이후, 영동지역을 복속하였고, 다시 영서 북부지역으로 돌아와 철원에 태봉국(泰封國)의 수도를 건설하였다. 생애의 중요한 시기를 대부분 강원도에서 보낸 셈이다.
이와 같은 설명을 덧붙이면, "아, 그렇다면 궁예의 활동내용은 강원도의 중요한 역사ㆍ문화 컨텐츠(contents)네요!"라고 무릎을 친다. 그제서야 나도 "그렇지요, 저희 박물관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연구 테마입니다"라고 화답해 준다.
그러나 궁예 이야기를 좇고 있는 내 속사정은 다른 데에도 있다. 우선은 그야말로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철원의 평화전망대에 올라가 넓디넓은 풍천원(楓川原)에 도성을 세운 궁예의 포부를 내 것처럼 가슴에 담아보기도 하고, 북한의 지형도를 펼쳐 놓고 삼방협(三防峽)을 바삐 빠져나가려는 궁예의 절박함을 같이 느껴보기도 한다. 게다가 지형도 상의 관문(關門)에서든지, 항공ㆍ위성사진 상의 궁예도성에서든지 도처에서 사람들의 마음과 인마(人馬)의 움직임이 느껴지니 재미가 없을 리가 없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궁예와 같은 옛 사람의 이야기를 좇다 보면, 불현듯 '나도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는 자각과 새로운 다짐이 생긴다. 궁예 이야기를 열심히 좇다 보면, 그 뒤를 이어가며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꼬리를 문다. 사람들이 궁예와 함께 도성을 경영했던 9~10세기로부터 철령(鐵嶺)의 관문을 통과하여 개경이나 한양으로 향하는 고려ㆍ조선시대 상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리고 궁예도성 지척의 백마고지에 시선이 머무를 때면 전쟁터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얕은 산마루에 살짝 얹혀진 평화전망대에서 박물관 직원들과 궁예도성 답사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나 자신도 발견하게 된다.
사실 DMZ 내에서 이루어지게 될 학술조사계획이라는 것은 박물관 활동과 연계된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고, 세월이 지나면 후세의 사람들이 읽어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의 평범한 오늘의 '이야기' 하나라도 제대로 써내려가야 하겠다는 자각이 든다. 뒤좇아 걸어오는 나그네를 위해 눈밭에 발자국을 어지러이 남기지 말라는 선인의 말처럼, 오늘을 사는 내 삶의 이야기 또한 좀더 진중하고 가지런히 가져야 하겠다.
유병하 국립춘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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