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스크린에 돌아왔다.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의 구원투수로 손꼽히는 봉준호 감독. 비록 장편 신작은 아니지만 옴니버스 영화 '도쿄!' 중 그가 연출한 '흔들리는 도쿄'는 웰메이드 영화에 굶주린 팬들의 허기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도쿄!'는 봉 감독이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 미셸 공드리 감독과 의기투합해 내놓은 한국과 일본, 프랑스의 합작 영화. 봉 감독은 "원래 옴니버스 영화는 서로 비교가 돼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만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 카락스의 '나쁜 피'를 보며 영화의 꿈을 키웠기에 별 고민 없이 연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흔들리는 도쿄'는 상영시간 30분의 비교적 짧은 영화지만 재치와 순발력과 정밀한 감정 묘사가 일품이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그의 별명이 다시 위력을 발휘한 셈. 그러나 정작 그는 봉테일이란 별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웬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변태처럼 느껴질 수 있다.(웃음) 치밀한 점도 있어야 하지만 영화는 정서가 더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봉 감독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이 영화 주인공의 심경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고 했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를 강원 속초시의 한 허름한 여관에서 혼자 쓰면서 심한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파도 소리의 수를 세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던 당시 경험이 연출에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봉 감독은 '흔들리는 도쿄' 촬영을 위해 홀홀단신으로 일본에 갔다. "신인 감독으로 돌아가 일본 촬영장 환경을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그는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한국영화계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구원투수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선 "부담감을 가질 틈도 없다"고 했다. "한 명의 감독이다 보니 대사 하나를 어떻게 바꿀까, (신작 '마더'의 주연인) 김혜자 선생님을 어떤 각도에서 잡아낼까, 그런 고민만 하니까 거시적인 한국영화 상황은 머리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억지 주장"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도 한국영화의 위기 극복을 위한 나름의 처방을 제시했다. "일단 개개인이 잘 해야 되는 거고요. 어려울수록 과감한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렵다고 안전한 영화만 좇아서는 안 되요. 새롭고 공격적인 시도만이 대중들의 눈을 끌 수 있습니다."
그가 촬영 중인 '마더'는 김혜자와 원빈이 캐스팅되면서 더욱 시선을 모았다. 그는 "아들이 어이없이 살인 누명을 쓰게 되면서 한 엄마가 세상과 맞짱을 뜨는 영화"라며 "'괴물'이 아버지들의 사투였다면 '마더'는 엄마의 사투를 다룬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마더'를 "김혜자 선생님과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든 스토리"라고 털어놓았다.
"'국민 어머니' 느낌이 아닌, 묘한 히스테리와 광기가 어린 김 선생님을 스크린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원빈에 대해서는 "강원 정선 태생으로 시골에서 커 온 흔적이 제대로 묻어나는 배우인데다 아들 역을 잘 표현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작이 대중과의 만남을 눈앞에 두고 있고, 새 작품도 찍고 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또 다른 커다란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 프랑스의 SF만화 '설국열차'를 원작 삼은 대형 프로젝트다. 빙하기가 닥친 미래의 지구, 생존자들을 싣고 쉼없이 달려야 하는 열차 이야기다.
국내 SF소설가를 통해 초벌 각색은 마친 상태다. "내년 상반기 '마더' 개봉 후 제가 직접 각색에 나설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성격상 여러 나라 배우가 나오는 영화죠. 역동적이면서 파괴력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 日 배우가 말하는 봉준호
'흔들리는 도쿄'에서 주인공 히키코모리 역을 연기한 가가와 테루유키(香川照之)는 일본의 명문 도쿄대를 졸업한 연기파 중견 배우다. 그는 "봉준호 감독은 나와 종자가 같아서 의사소통이 잘 된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끝에 현미경이 달린 50m짜리 커다란 크레인을 운전하는 기사 같다. 큰 것과 작은 것,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감독"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가가와는 "봉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비디오 테이프에 구멍이 나도록 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송강호씨의 발차기를 얼마나 맞고 싶었는지 모른다.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봉 감독이 굉장히 꼼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봉테일이라는 그의 별명도 익히 알고 있었다. 같이 일해보니 '내 예상이 틀리지 않구나'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가와는 "봉 감독은 촬영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들이 헹가래를 쳤는데 일본에서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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