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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테러지원국 해제와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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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테러지원국 해제와 남북관계

입력
2008.10.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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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진 것이 당장 북한의 경제와 사회를 뒤바꿔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악의 축'에서 정상국가로 전환할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정치적 의미가 크다.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는 비핵화 여정의 중대한 진전이기도 하다.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핵 분리검증안'을 받아들였다. 논란이 됐던 핵시설 검증에서 양국은 신고된 핵시설을 우선 검증하고, 미신고 시설에 대해서는 상호 협의 하에 검증하기로 했다. 6자회담도 이 달 안에 재개될 전망이다. 이로써 부시정부 임기 내 2단계 이행조치와 상응조치가 완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단계 조치의 확실한 종결과 3단계 핵 폐기 조치가 초보적 수준에서라도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북의 '나쁜 행동'은 비합리적 선택

일각에서는 북한이 '나쁜 습관'을 반복할 가능성에 반신반의한다. 미신고 시설 사찰은 북한의 동의 하에서만 가능하도록 했는데 과연 북한이 동의하겠냐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핵확산 검증문제는 물 건너간다. 그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이 지속될 수 있는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완료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과거 핵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점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미의 신뢰 수준이다. 이번 합의는 철저히 현재의 신뢰수준에 맞춰 북미가 타협한 정치적 산물이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받은 지금, 북한이 판을 깰 정도의 '나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합리적 선택이다. 이제 북한에게도 잃을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2년 정치ㆍ군사 분야는 물론 경제분야까지를 포함한 강성대국 성취를 내건 그들이다. 선을 넘는 나쁜 행동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문제는 테러지원국 해제가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선순환 관계로 접어들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느냐다. 북한은 어제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반북 대결정책을 지속한다면 "북남관계의 전면 차단을 포함해 중대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6ㆍ15공동선언과 10ㆍ4선언에 따라 북남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고 부연한 것을 보면 강력한 대화 제의의 화법일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핵문제는 진전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후퇴한다면, 그 불일치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한국이 6자회담 틀 안에서 일본처럼 소외될 가능성도 높다.

정부는 남북관계를 재점검하고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의 가시적 성과가 보이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대남정책을 강경으로만 몰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요구된다.

비공식 대화ㆍ특사 교환 검토를

당장 공식대화가 힘든다면 비공식 통로나 특사교환 등의 우회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사가 파견된다면 6ㆍ15와 10ㆍ4선언을 모양새 있게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북한 당국과 협의해야 할 것이다. 그 밖의 현안들도 대범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최선의 합의점을 찾되, 막히면 차선 중 최선을 찾으면 된다. 남한은 포용의 정신으로, 북한은 실용의 정신으로 관계 복원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테러지원국 해제 국면에서 남북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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