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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공산주의 유령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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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공산주의 유령 깨웠다"

입력
2008.10.2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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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공산당에 가입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유럽에서는 칼 마르크스가 부활하고 있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공산당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난 세기의 얘기가 아니다. 공산주의가 종언을 고한 지 한참이 지났다고 믿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20세기말 자본주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고 여겼던 이데올로기 논쟁이 21세기에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논쟁의 양상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는 반면 경쟁 상대가 없어 보였던 자본주의는 이제 옹호론자들이 적극 이념적 방어벽을 세워야 할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금융 분야에서 전세계적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반작용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18일 금융위기 후 일본 젊은이 사이에서 공산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공산당은 매달 1,000명이 넘는 새 당원이 입당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를 다룬 고전소설은 출간 8년 만에 수십만부가 팔려 당당히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고, 공산주의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마그마> 는 단기간에 20만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마그마> 를 출간한 언론인 코스케 마루오는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주인공들의 절망감이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념적 뿌리가 깊은 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가 저술한 고전적인 자본주의 비판서 <자본론> 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자본론> 은 옛 동독지역에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팔렸다. 주민 설문조사에서도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좋다는 응답이 43%에 달했다.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이자 현대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월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공산당이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미 공산당 뉴욕 본부의 리베로 델라 피아나 당의장은 “금융위기로 시장이 스스로를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왜 도래할 것인지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피아나 의장은 최근 시민들의 전화 문의가 늘어나고 질문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 사회주의 노동자당 소속의 세스 델링거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사회주의의 기회”라고 말했다.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퍼져가자 서구 언론과 정치권은 차단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자본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는 많은 결점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문제점을 드러내겠지만, 인간이 고안한 최선의 경제체제가 바로 자본주의”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운용상의 실패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던 대규모 구제금융에 대해 “이념적 문제가 아닌 실용적 문제”로 규정하고 “구제금융이 잘 처리되면 납세자들은 은행 투자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국 정상도 자본주의 옹호론을 거들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8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주제 마누엘 바로소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나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 규제가 필요하지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이라는 자본주의 근간은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 금융시장을 감독할 새로운 경제기구의 필요성을 지적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변화는 자본주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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