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철
달리는 고속 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
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
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
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당가의 석류나무를 베어버려야겠다고 작정한 게 이태 전이다. 오래 전부터 열매도 쓸 만한 게 없고, 몇 해 전부터는 아예 꽃도 피지 않는다. 올해는 반드시 베어버리겠다고 틈 날 때마다 중얼거렸는데, 그걸 단순 협박이 아닌 기정사실로 알아들었나 보다. 톱과 장비를 찾던 지난 여름 석류나무는 놀랍게도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성한 꽃을 매달아놓았다.
죽음 앞에서 피어나는 꽃을 그저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생의 엄연함이 비장하게 다가오는 그 앞에서 편안한 자리에 앉아 창 밖으로 포착한 아름다움은 어딘지 공허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만약 아름답다면, 그것은 ‘향기 나는 꽃’으로서가 아니라 ‘피 흘리는 꽃’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그리하여 유태인들과 같은 처지가 된 수용소장처럼 돼지를 바라보던 나도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 도축장이 저 앞인데 내게는 과연 어떤 몸소리쳐지는 생의 엄연함이 있는가.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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