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매 날은 잔칫날이었다. 농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갖은 고생 끝에 거둔 결실, 쌀이 돈으로 환산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마을에서 경운기들이 쌀가마를 높다랗게 쌓고 면 소재지 농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벼들은 등급으로 나뉘었다. 1등급이 많을수록 술맛이 장쾌했고 2등급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지만 등외급은 쓰디쓴 얼굴로 취해갔다. 추곡수매는 특히 쌀 수매는, 정부가 농촌과 농민을 지키는 혈관과도 같은 제도였고, 그 날은 농촌이 가장 부유한 날이었음에 틀림없다.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세계화에 매진해온 정부는, 비농민 국민의 암묵적 지지에 힘입어, WTO 협정과 대규모의 재정적자를 이유로 수매를 폐지하게 되었다. 수매 폐지로 인한 농촌과 농민의 급격한 몰락을 막기 위해서, 그러니까 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도입한 제도가 바로 쌀직불금제다.
이 나라의 법과 제도는 가진 자를 위해서는 세밀하다 못해 교묘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지만, 서민 이하를 위해서는 주먹구구에 엉터리일 때가 많다. 일부 파렴치한 고위공무원들과 의원들 덕분에 온 국민이, 쌀직불금제도가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졌는지 잘 알게 되었다. 또 마녀사냥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제도를 확실히 바로잡아야 한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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