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하이켄 지음ㆍ권복규 정진영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ㆍ487쪽ㆍ2만원
"오늘날 인생의 성공을 바란다면 외모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인 것이다. 언제든지 '최상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125쪽) 요즘 각종 매체에 즐비한 성형 전문의의 광고 문안이 아니다. 이미 1923년 미국의 대중 잡지에 실렸던 성형수술 광고의 카피다. 미국인들은 머잖아 그들을 사로잡을 '열등 콤플렉스'라는 심리학적 개념을 예견이나 한 듯한 선전에 홀렸다.
1920~30년대 미국을 외모지상주의의 진원지로 만든 풍경의 하나다. 할리우드는 그 정점이었다. 아직도 미의 여신들과 신들이 사는 곳으로 믿어지는 할리우드는 성형외과의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도록 하고 있다.
1980년대의 한국, 스포츠신문에서는 성형수술 광고가 넘쳐 났다. 신체 특정 부위 확대술 등 당대의 문화현상처럼 난무했던 광고 문구는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한국인들의 무의식이 됐다. 이제 거의 모든 한국 여성들은 물론, 적잖은 남자들에게까지 성형수술은 당연한 통과의례가 돼버린 것이다. 개그 대사에서뿐만 아니라, 21세기의 한국사회는 "못생긴 건 죄"라고 사람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주입시키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 미국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에 성형수술이라는 메스로 예리한 절단면을 내고자 한다. 덕택에 의학사와 문화사이면서 문명에 대한 비평서이고, 크게 보아 한 권의 풍속사서가 됐다.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인 저자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멋진 신세계'라는 신화, 탐욕스런 개인주의, 성공(출세)주의라는 미국 사회의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 바로 성형수술이라고 말한다. 상업광고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완벽함으로 인식됐고, 그 표준을 향해 내달리는 성형 문화를 저자는 미국 문화의 "끔찍한 일면"이라고 표현한다. 파라핀, 실리콘, 최근의 콜라겐으로 이어지는 주입물 등 성형수술과 관계된 어두운 역사가 모두 미국에서 생겼다.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성형외과 의사들이 미용 수술을 정당화하기 위해 '열등 콤플렉스'를 만들어냈다고 혐의를 둔다. 1921년 미국성형외과의사협회가 창설되고 심리학과 정신과학 등 신생 학문의 이론을 유입하면서, 미국인의 평균적 의식에는 성형수술이 자연스럽게 둥지를 틀었다. "현대 생활의 성공은 외모(첫인상)에 달려있다"며 광고도 요란하게 거들었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이 사이버 시대, 성형수술이 제공하는 '완전 가상의 세계(never-never land)'가 가수 마이클 잭슨의 얼굴보다 잘 입증된 곳은 없다. 아이, 어른, 남성, 여성의 얼굴을 두루뭉술하게 그러나 정교하게 합쳐놓은 그 얼굴의 기저에는 분명 인종적 동기가 있으며 20세기 미국이 어딘가 심각하게 잘못돼 가고 있다는 증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최소한 흑인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성형 기술의 발전, 모험심 강한 의사, 엄청난 돈 등 가장 미국적인 요소들이 결합한 결과라는 점"이다.
책을 번역한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권복규 교수(의료 윤리 담당)는 "자칫 기술적인 문제라고만 여겨지기 쉬운 의료가 과학과 인문의 교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야라는 사실을 증명한 책"이라며 "미용 성형수술에 가려진 객관적 사실을 치밀하게 추적한 이 책은 결국 20세기 미국이라는 거대한 실체의 윤곽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원제 'Venus Envy'(비너스 선망)는 프로이트의 핵심 개념인 'Penis Envy'(남근 선망)를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 물질주의 문명의 일단을 성형이라는 렌즈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못 생겼다고 주눅들지 말라고 한다.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좋은 예다. 그녀는 독특하게 생긴 코가 언제나 말썽이었다. '매부리코' '가당찮은 코' '독수리 부리' 심지어 '마녀의 코'라며 유수의 언론들까지 떠들었지만, 정작 미국을 경악시킨 점은 그녀가 그럼에도 코에 칼끝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대담성 덕에 미에 대한 고정관념이 교정됐고, 나아가 그녀의 변함없는 코가 세간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키더니 급기야 최첨단 패션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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