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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자전적 산문집 '영혼의 식사' 낸 中 신역사소설 개척자 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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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자전적 산문집 '영혼의 식사' 낸 中 신역사소설 개척자 위화

입력
2008.10.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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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뒤 국공내전, 공산정권 수립, 문화대혁명 등 굴곡많은 중국현대사를 통과한 한 남자의 한평생을 조명한 소설 <인생> (1993).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 소설의 지은이 위화(48)가 자전적 산문집 <영혼의 식사> (휴머니스트 발행을 냈다.

위화가 누군가? <인생> 을 비롯해 <허삼관 매혈기> (1996) 등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조명하는'신역사소설'의 개척자다. 문혁기 지식인의 피해 양상을 다루는 '상흔문학'계열이 주류였던 중국 문단에 충격을 주며 이른바 '제3세대 작가'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이다. 사연없는 작가가 어디 있으랴만 그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좀 독특하다.

작가가 되기 전 그는 인구 2만명인 중국 남부의 작은 마을 하이옌의 치과의사였다. 당시 중국에서 치과의사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직업은 이발사나 신발수선공처럼 번화가에 파라솔을 펴놓고 이전에 뽑은 이들과 집게, 쇠망치 같은 것들을 들고 호객 행위를 하거나, 짐꾸러미 하나 멘 채로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장사꾼과 비슷했다.

스스로'이빨가게'라고 부르던 작은 마을의 위생원에서 늙은 고참의사와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하루 8시간씩 가난한 농부들의 충치를 뽑는 노동은 상상력 풍부한 위화에게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 경험을 그는"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벌린 입을 보며 무한한 무료함을 느꼈다.나는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산문집은 변변찮은 벽지의 치과의사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된 저자가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나는 왜 글을 쓰게 됐는가?''나의 소설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털어놓는 세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자전적 에세이는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류의 상투적 성공담으로 전락하기 쉽지만 위화의 글들에는 작가 특유의 낙천성,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 담담하지만 진솔한 고백,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등이 잘 버무려져 반짝반짝하는 매력이 나온다.

갓난 아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본 뒤 "그렇게 작은 아들녀석이 방금 태어났다는 생각에 나도 몰래 '히히'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는 이 팔불출 아버지의 회상은 독자들을 슬며시 미소짓게 할 것이고,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지은이가 기껏 고구마를 축제 때나 먹을 수 있는'영혼의 식사'로 소중하게 여기는 옛 흑인들의 사연을 접한 뒤 분노를 표시하는 대목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그의 가장 튼튼한 문학적 자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창작의 고통, 작가로서의 자의식, 책읽기라는 행위의 의미를 깊이있게 다룬 2부 '삶과 문학'의 글들도 매우 인상적이다. 가령 장편소설을 창작하는 고통에 대해 위화는 "작가는 한편으로 자신의 육체와 싸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감과 싸워야 하는데. 영감은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잡아탈 수 있는 택시가 아니기 때문이고, 작가가 자신의 온갖 초조와 불안 고통과 호흡곤란을 대가로 지불한 후, 또 책상 앞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또는 며칠을 기다려야 그 빛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겹겹이 흐르며 자신을 비추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219쪽) 라고 적는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작가적 고뇌를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구절이다.

이밖에도 연극 '지하철 1호선'과 전인권의 콘서트를 구경한 뒤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선보이는 서울 방문기, 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첫번째 자극을 주었던 문혁기의 대자보에 얽힌 추억 등의 글은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위화의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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