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에 대한 암울한 예상이 잇따르는 가운데 금기어로 여겨지던 디플레이션(구매력 감소 등의 이유로 물가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의 반대현상)의 현실화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미국 정계 지도자 사이에 내년 중 디플레이션이 도래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싹트고 있다"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가능성은 아직 낮지만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닛 옐런 샌프란시스코FRB 총재는 "최근 유가가 하락하고 일자리와 상품의 수요도 감소해 물가 상승률이 상품의 가격 안정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복잡하게 얘기했지만 유가하락이 앞으로 닥칠 디플레이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언뜻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의 구매력 하락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기업의 생산량 감소와 임금 감소로 이어져 결국 더 큰 수요감소를 유발하는 악순환에 봉착하게 된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나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바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졌기 때문이다.
민간 전문가들도 디플레이션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연구소 이코노믹아웃룩그룹의 버나드 보물 이사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한달 전 5%에서 최근 10~15%로 급증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CNN머니에 밝혔다.
디플레이션 발생가능성을 10~30%로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영국 경제연구소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폴 애쉬워스 미국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모든 경제지표가 디플레이션으로 향하고 있다"며 "정책담당자가 신속히 대책을 마련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현재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이 많지 않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고민이다. FRB는 조만간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기준금리는 이미 1.5%까지 낮아져 인하 가능폭이 크지 않다.
WSJ은 FRB가 1940년대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꺼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오래된 카드란 미 재무부의 장기국채 수익률을 강제로 낮춰 안전자산을 취득하려는 투자자들이 저축을 포기하고 당장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극약 처방이다.
FRB의 한 관계자는 "최근 통과된 금융구제법안에 따라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이 예치한 지불준비금에도 이자를 지급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민간은행에 추가자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