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초 일본에서는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무더기로 나오는가 하면, 그에 앞서 중국에서는 선저우(神舟) 7호가 우주 유영에 성공했다는 보도 등을 접하면서 주변의 지인들이 필자의 생각을 묻곤 한다.
물론 최근 중국의 우주 과학기술 개발은 괄목할 만한 측면이 있으나, 그 이면의 정치적 배경 등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유럽의 선진 각국들이 꼭 중국보다 우주 과학기술이 뒤떨어져서 그 동안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올림픽 개최와 마찬가지로 우주개발 역시 '중국의 위대함'을 과시하려는 당국의 의도와 관련 효과 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주개발 자체가 옛 냉전시대의 체제 경쟁 등에서 비롯되었던 정치적 배경을 간과하기 어렵다.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 발사와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성공 등 우주 분야에서 잇달아 옛 소련에 뒤진 미국은 국가적 자존심마저 상처를 입었다고 여기면서 이후 우주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국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1969년 7월에 사회주의 진영보다 앞서서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과 뒷말도 많았다.
최근 중국의 우주 유영 장면도 가짜 여부 논란에 휩싸인 듯한데, "인간은 달에 간 적이 없고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는 식의 황당한 음모론이 한때 고개를 들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정치적 배경 등을 지적하고자 했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현대 과학기술의 특징 중 하나인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 즉 수많은 과학기술인과 연구기관들이 동원되고 거액의 비용이 투입되는 대규모의 종합적 연구개발 형태 역시 군산학복합체제 등 정치경제, 군사적인 배경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거대과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미국의 핵무기 개발계획 추진과 함께 생겨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도 새로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에 '거대과학'을 지원하는 부서가 따로 설치된 바 있다. 우주개발, 핵융합기술, 가속기 관련 부문 등은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 거대과학이라 불릴 만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투입하여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 의미와 발전 전략 등에 대해 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거대과학과 군산학 복합체제의 원조 격인 미국마저도 1993년 당시 추진 중이던 세계 최대 규모의 초전도 슈퍼 입자가속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의 건설을 중단하고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했던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표면 상의 이유는 예산 부족이었겠지만, 실은 옛 소련의 해체와 냉전 종식에 따라 '잠재적 군사 관련' 부문에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처럼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이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ㆍ장기적인 과학기술 발전 계획과 전략은 한층 더 중요해진다. 그런데 이번 일본 출신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이 모두 입자물리학 분야였다는 데에서, 우리도 입자가속기를, 그것도 충돌형 거대 입자가속기를 꼭 건설하자는 황당한 주장이 고개를 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학기술계 안팎의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기' 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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