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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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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머 감각

입력
2008.10.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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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 넘는 강연은 아무 준비가 필요 없다. 그러나 20분을 강연하려면, 2시간 정도의 준비가, 5분짜리 강연을 위해선 하루를 꼬박 준비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내 생각을 전달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얘기라는 뜻이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한 말이다 라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서 있다가 무심코 본 플랫폼 벽면에 붙어있는 오늘의 말씀 류에 써 있는 글이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개그맨들이 개그 프로의 한 코너에서 몇 분간을 웃기기 위해 한 주 내내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고 소개한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래 사실 사람 웃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 짧은 시간에 웃기고자 하는 걸 전달한다는 건 정말 많은 생각과 준비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물론 가끔 개그 프로들을 보면, 박장대소하는 관객들을 보면서'저게 웃기나'하는 생각도 하고 웃는 관객만 보고서도 피식 웃기도 하곤 한다. 웃음에 반응하는 게 각각 다 다르다는 것이리라.

웃기는 사람,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왜 ? 웃기는 사람, 유머감각 있는 사람치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없다 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유머감각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다. 마음의 여유 없이 어떻게 남을 웃길 수 있겠는가. 생각도 더 많이 해야 하고, 남들의 얘기도 더 잘 들어줄 줄 알며,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해 적절한 반응을 해 주면서, 적합한 말을 날려 사람들을 실소든, 파안대소든 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다. 연기자들도 우는 연기는 테크닉으로도 해결할 수가 있다. 웃는 연기, 정말 어렵다. 그런데 코미디 영화의 주연 배우들은 영화제 같은 데서 주연상 타기 어렵다. 그래서 배우들도 코미디 영화를 좀 꺼리는 경향이 있다.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은근한 편견이 작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실컷 웃고 난 관객들도 웃고 나면 그만이지 하는 식의 반응과, 평론가들은 코미디 영화의 분석 따윈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감독들 자신도, 어쩐지 코미디 영화의 연출에 대해, 덜 폼이 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같다.

사석에서 만나면 엄청난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감독들이 꽤 있다. 그 기가 센 감독들 틈바구니에서 좌중을 유머로 휘어잡는 건 보통 이상의 재능이다. 다른 감독들이 말한다. "감독님 다음 작품 코미디 영화인가요?""감독님은 코미디 영화 연출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등등. 그 감독의 답은 이렇다. "사석에서까지 제 전작 영화처럼 심각하면 어떻게 살아요. 농담과 유머는 제 취미 생활입니다." 또 다시 좌중이 폭소….

사실, 코미디 영화의 연출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전작이 거의 다 코미디 작품으로 알려진, 우리가 잘 아는 우디 앨런 감독도 코미디는 아주 엄격하고 까다롭게 연출해야 하는 장르라고 말한다. 웃음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는 게 관건이며, 현실적이고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스파르타식 연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풍자니 해학이니 골계니 하는 것에 꽤 익숙한 민족임에도, 사회가 어두워져서 그런지 좀체 잘 웃지 않는 얼굴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코미디 영화들이 좀 많이 제작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좀 저질이면 어떻고, 선남선녀들이 망가지면 어떠랴…. 미남미녀들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죽을 때 유머 감각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노학자의 소원을 읽은 적이 있다. 유머감각, 키울 수 있다. 웃으며 삽시다!

이미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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