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위기가 아니라 세계의 위기이며, 금융위기가 아니라 실물부분을 포함한 경제위기로 악화되고 있다. 이 위기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몰라 모두가 허둥대고 있다. 각국 정부들이 국제공조를 외치고 있지만 경쟁적으로 최후의 처방들도 남발하고 있다.
옆에 있는 나라가 예금이나 은행 간 거래를 정부가 무한정 지급 보장하겠다고 발표하는데, 어느 나라인들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 어떤 독이 돼서 돌아올지 모르지만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리더십도, IMF의 능력도 세계적 위기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뭔가 이들을 능가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가 다 얽힌 금융자본주의
이럴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위기의 출발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도 사실상 금융자본주의의 등장에 그 원인이 있었다. 신용이 약한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줘 집을 사게 하면서 부동산 버블이 생겼기 때문이다. 둘째, 금융 세계화로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이 채권채무관계로 얽히면서 한 곳의 위기가 전 세계적 파급효과를 갖게 되었다. 특히 월가와 같은 금융중심지의 위기는 세계 전체를 위기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세계화한 금융을 규율할 책임을 질 만한 세계정부도 패권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의 자율기능에 맡기면 된다는 신념은 사실 1990년대 후반의 동아시아 위기나 미국의 천재적 금융 공학자들이 만든 LTCM의 붕괴로 무너졌다. 그 이후 국제 금융질서 재편 논의가 한때 봇물을 이루었지만 강대국들의 이기심에 밀려 겉모양만 약간 손질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번 금융위기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금융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국내외적으로 통제를 벗어난 금융자본의 탐욕스런 이익 추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리고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반복돼온 국제금융위기의 확대판이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반복하지는 이번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의 핵심에는 고삐 풀린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과 영국이 전후의 국제 통화금융질서의 구축을 둘러싸고 협상할 때 영국측 대표가 바로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였다. 그는 탐욕스런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규제해야 안정적인 국제 통화금융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에 기초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제한했었다. 그러나 이 체제의 붕괴 이후 케인즈의 가르침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위기는 케인즈의 복수이다.
앞으로 국제공조의 목소리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선진 8개국 재무장관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정상회담도 요청해 놓았다. 그런데 국제공조가 성과를 보려면 각국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누구나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상대방이 책임을 져주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금융질서 재편 적극 참여해야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일본이나 독일의 통화가치를 상승시킴으로써 자국의 문제를 해결했다. 이번에도 미국은 자국의 기득권은 포기하지 않고 유럽과 동아시아가 책임을 져주기를 바랄 것이다. 신 브레튼우즈나 새로운 국제금융기구의 설립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이번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책임이 막중하다.
미국이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제약을 가하는 데 동의하지 않거나 IMF나 세계은행에 대한 기득권 축소라는 양보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국제 통화금융질서의 수립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번 위기 이후의 국제통화금융질서를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 이후 우리의 국익과 국제적 위상이 걸려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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