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도봉구 창동 컨테이너 밀집촌. 다닥다닥 붙은 9개 컨테이너 가운데 단 한 개만이 시커멓게 그을린 형체였다. 전날 새벽 화재로 불과 13분만에 박모(57)씨 등 4명의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간 곳이다.
노란색 경찰 통제선이 쳐진 27㎡ 면적의 컨테이너 안에는 화재 당시의 참화를 보여주듯, 이들을 숨지게 한 유독가스를 내뿜은 폴리우렌탄폼 벽체 잔해와 전선, 이불이 뒤엉켜 있었다.
밀폐된 구조에다 복잡한 전기배선, 주방용 LP가스, 불에 취약한 내부 단열재 등으로 화재에 극도로 취약한 주거용 컨테이너가 소방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면서 화재시 곧바로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6일 경기 고양시 풍동의 주거용 컨테이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안모(45ㆍ여)씨가 숨졌고, 앞서 5월에는 경기 성남시 구미동에서, 4월에는 경남 거제시 문동리에서도 컨테이너 화재로 각각 1명이 숨지는 등 올 들어 컨테이너 화재로 매월 1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대형 인명 피해를 유발하기 십상인 컨테이너 화재가 빈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방당국의 안이한 대응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1999년 유치원생 19명과 인솔 교사 4명이 숨진 경기 화성의 '씨랜드' 참사도 컨테이너 화재였다.
당시 소방당국은 "무허가 시설은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그 후에도 이를 고수하면서 10년 여 동안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정기창 호서대 안전보건학과 교수는 "컨테이너 화재는 '플래시 오버'로 불리는 폭발적인 연소가 일어나는 시간이 8분 정도로 일반 건축물보다 3~4분 짧고, 폴리우레탄폼이나 발포 폴리스티렌 등 유독 가스를 내뿜는 재료를 벽체로 쓰기 때문에 불이 나면 대피도 못하고 질식사할 위험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또다른 화재 전문가는 "초기 화재 진압을 위해 스프링클러, 방화벽 등 설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제기됐지만, 소방당국은 지금까지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소방당국은 화약고나 다름 없는 주거용 컨테이너가 어디에 몇 개나 설치돼 있는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4명이 숨진 컨테이너 관할 소방서 관계자는 "무허가 컨테이너는 소방안전 점검 대상 건물이 아니어서 평소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봉구 관계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컨테이너를 철거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현우 경민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인력이 부족해 소방점검을 못한다면 제조업체에 화재 감지기, 경보벨, 환기장치 등 비교적 적은 돈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시설 부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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