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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수요자 중심 교육을

입력
2008.10.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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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새 교육 정책을 거칠지만 속도감 있게 진행시키고 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준의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자율형 사립고의 학생 선발방식 모형 등이 공개됐고, 기숙형 공립고 82곳과 마이스터고 9곳이 선정됐다. 서울시교육위원회의 제동으로 주춤해 있지만 내년 3월 개교 목표로 국제중 설립이 추진 중이고, 고교선택제 시행 계획도 나왔다. 모두 경쟁과 자율을 앞세운 수월성 위주 교육 정책의 결과물이다. 지역ㆍ학교ㆍ교사ㆍ학생 간 경쟁으로 획일적 평준화 교육이 떨어뜨린 학습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일견 타당하고 일리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제도들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사교육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이것은 실증적으로 확인된다. 국제중 전형 방법 발표 전에 학원가에 벌써 국제중 대비반이 성업 중인 게 그 예다. 추첨으로 합격자를 정한다지만 자립형 사립고나 국제중에 진학하려면 내신 성적을 높이고 면접 점수를 잘 따기 위한 사교육은 불가피하다.

사교육 키우는 새 정부 정책

전문계고의 대학 진학 열풍이 거센 상황에서 마이스터고는 '전문계고의 특수목적고'가 될 것이고, 마이스터고 진학 대비 사교육도 붐을 이룰 것이다. 일제고사 결과가 공개되고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학교 안팎에서 일제고사 대비 학습에 내몰리게 된다. 이것들은 경쟁을 통한 수월성 교육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넌센스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만들고, 점수 성적 위주의 경쟁 제도를 만든다고 아이들이 글로벌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지리 물리 화학 등 수십년간 변화없이 유지돼 온 과목들 속에 파묻혀 1,2점을 다투며 입시 준비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 인재 육성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대학의 어느 학부, 학과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적성에는 맞는지, 자신의 미래 모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찬찬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그저 1,2점 차이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 버리는 입시ㆍ교육 체제가 길러낸 인재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의 관심과 기호는 무시한 채 교육 공급자의 편의만 좇는 교육 내용과 시스템은 한계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음식 맛은 칼, 냄비 같은 도구보다는 음식 재료, 양념, 요리사의 자질 등이 결정한다. 교육도 그렇다. 어떤 내용과 질의 교육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웠느냐가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결정적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부는 교육의 콘텐츠, 교육의 방법론보다는 외양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급급하다. 자칫 우리 교육이 또 한번 제자리 걸음을 하며 세월을 허송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정부는 교육계와 함께 교육의 외양 못지 않게 교육의 속을 꽉 채울 새로운 교육 콘텐츠와 교육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 과목 분류를 해체하고 새로운 통합교과를 개발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학문 영역 파괴와 융합이 가속화하는 '통섭(統攝)의 시대'에 국어와 과학을 소통케 하고, 수학과 물리를 넘나들게 하며, 미술과 역사가 서로 스며들게 하는 시도들 말이다. 교과목을 필수ㆍ선택과목으로 나눠 학생들이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해 듣게 하고, 핀란드처럼 학생들이 팀 단위로 과제를 수행하는 '협력 수업' 방식의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대학이 바뀌어야 변화 가능

한마디로 기존의 공급자 중심에서 철저히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수학 잘 하면 이과, 영어 잘 하면 문과'라는 고정관념으로 개인의 지적 욕구와 상상력을 억제하고 학문 간, 직종 간 벽을 쌓게 한 문ㆍ이과제의 폐지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의들이 진전을 이루려면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입시를 없애지 않는 한, 대학은 초ㆍ중ㆍ고교 교육 변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입시 자율을 약속한 만큼 대학은 입시제도와 교육내용의 근본적 변화로 우리 교육제도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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