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조민준(10ㆍ가명) 군은 서울 금호동 13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한 살 위 누나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간 경화로 2년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뒤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69)는 백내장을 앓고 있고 할아버지(73) 또한 오랜 투병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민준이네 수입은 정부보조금 월 33만원이 전부다. 폐품수집으로 한 달에 10만원 정도 벌었던 할머니는 눈이 안 보여 그마저 할 수 없게 됐다.
민준이에겐 학교에서 주는 급식이 유일한 끼니가 되는 날이 많다. 방학 때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한 달에 24장씩 나오는 식권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지만, 식권을 이용하기가 부끄럽고 '못 사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게 싫어 차라리 굶는 날이 많다. 가난과 배고픔은 민준이에게서 희망마저 빼앗았다.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자, "그런 거 없어요… 할머니나 안 아프시면 좋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희망을 뺏긴 아이들
세계 11번째 경제 규모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은 대한민국. 화려한 수사의 이면에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이 적절히 나눠지지 않는 왜곡된 현실 속에 어른들의 실직과 사업실패, 이에 따른 부모의 이혼과 가출로 가정이 무너지면서 수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할 시기에 배를 주리고 있는 것.
초등학교 2학년 최현석(9ㆍ가명) 군. 현석이는 서울의 한 반지하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38)와 신부전증으로 앓아 누운 할머니(68), 역시 일용직 노동자인 삼촌(36)과 함께 산다. 아버지는 현석이가 3살 때 아내와 이혼한 뒤 알코올 중독으로 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17일 찾은 현석이네 집은 불을 꺼 놓으면 낮에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음습했다. 습기 가득한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제 집인 양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했고, 시큼하고 매캐한 냄새를 자아냈다. 싱크대는 언제 사용했는지 모를 정도로 더러웠고, 먼지를 덮어 쓴 주방도구는 위생상태를 짐작케 했다. 어디 하나 현석이를 위해 따뜻한 밥 한 공기 마련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현석이네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25만원과 삼촌의 불규칙한 벌이로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올 초부터 할머니 병세가 나빠져 한달 약값으로만 20여만원이 들어간다.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이 더욱 쪼들리고 있다.
평일 점심은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말이나 방학이 문제다. 할머니가 밥을 해 줄 것으로 보고 일주일에 한 번씩 부식이 전달되지만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 때문. 담당 사회복지사 김모씨는 "주거환경도 좋지 않고 할머니 치료비가 많이 들어 기본적인 생활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지역아동 센터 등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급식 지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 붕괴에 멍드는 동심
가정의 해체, 붕괴는 굶주림과 함께 종종 학대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1학년 고호철(8ㆍ가명) 군은 아버지와 둘째 누나(11)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2006년 어머니와 이혼했다.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아 수 억원의 빚을 지자 아버지는 술에 의존했다. 주정이 잦아졌고, 누나들과 호철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경찰에 아동 학대로 여러 차례 고발되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동사무소에서 주는 기초생활 급여 50여 만원은 모두 아버지의 술값이 됐다.
자선단체가 챙겨주는 라면이 사실상 주식이고, 그마저도 충분치 않아 저녁은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호철이는 "학교 안 가는 날은 점심도 못 먹어요. 그럴 땐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요"라고 했다. 큰 누나(14)는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한테 가버렸다. 파출부로 일하는 어머니가 소식을 듣고 호철이와 둘째 딸을 데려오기 위해 지난달 양육권 변경 신청을 법원에 냈다.
"가난은 내게서 끝나길…"
초등학교 1학년 이용철(8ㆍ가명) 군의 어머니 임모(34)씨는 최근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했다. 길을 가던 용철이가 중국음식점을 지나가다 "엄마 돈 없지? 자장면 먹으면 돈이 많이 들겠지?"라고 물었던 것. 임씨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애가 엄마가 돈이 없을 거라는 걱정부터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가슴이 먹먹했다"며 눈시울 붉혔다.
2002년 남편과 이혼할 때만해도 임씨는 자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월급은 받았다. 하지만 2005년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가 6개월 만에 망하고 빚만 2,000여만원 남았다. 2006년 입에 풀칠도 못할 상황이 되자 용철이를 데리고 한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무료 모자원에 의탁해야 했다.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모자원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올 초 700만원의 카드빚을 끌어 서울 중계동 원룸아파트에 何섭?입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용철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증후군(ADHD)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식과 아토피까지 용철이를 괴롭혔다. 치료비를 마련해야 했다. 임씨는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했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몸이 안 좋은 용철이가 끼니를 스스로 챙겨먹지 못했기 때문.
현재 임씨의 수입은 동사무소로에서 받는 기초생활 급여 월 50여만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집세 20만원, 관리비 10만원, 치료비 8만원, 용철이 용돈 1만원을 제외하면 10만원 정도로 한달간 먹고 살아야 한다. "희망이 보이질 않아요. 일을 하면 아이가 굶고, 일을 안 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악순환이죠. 애한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데…."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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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생활보장 대상 한부모 가정 비율 5년새 20%나 증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8세 미만 어린이ㆍ청소년 1,142만여명 가운데 의식주 등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절대빈곤 어린이와 청소년이 100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평일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받는 57만여명, 지역자치단체가 제공하는 휴일과 방학 급식지원을 받는 경우는 27만여명이다. 지자체 급식 수혜자가 대부분 학교 급식 제공 대상자에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100만명 중 나머지 약 40만명은 하루 한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결식아동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효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정말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생계형 결식도 많지만, 차려줄 보호자가 없어 끼니를 거르는 방임형 결식도 증가하고 있다"며 "한부모 가정 및 조손(祖孫)가정의 증가도 굶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라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올 8월 발표한 <2007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가구 중 한부모 가정(모자가정 혹은 부자가정)은 2003년 8만3,600 가구에서 지난해에는 10만2,800로 증가했다. 5년 새 2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급식지원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학기 중 학교급식과 달리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주말이나 방학 급식은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지원에 차이가 있다.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몇몇 지역은 재정부족으로 급식비 지원을 전혀 안 하고 있다"며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비 예산지원은 중앙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끼 급식비도 너무 낮은 수준이다. 결식 아동들이 지원받는 급식비는 한 끼 3,000원으로 2005년 서귀포 부실 도시락 파문 이후 500원 오른 뒤 그대로다. 현재 자장면 가격이 4,000∼4,500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자장면조차 사먹을 수 없는 금액이다.
최선숙 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팀장은 "아이들이 3,000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1,500원짜리 김밥 한 줄에 1,000원 안팎의 컵라면 정도"라며 단가 인상을 촉구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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