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과거사 청산 바람이 거세게 불 조짐이다. 70년여년 동안 애써 외면했던 프랑코 시대의 집단 암매장 사건을 재조사하는 스페인판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스페인 최고형사법원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는 16일 1930년대 스페인내전 당시 프랑코 정권의 조직적 민간인 학살을 공식 조사하라고 명령했다고 영국 BBC 방송과 미 AP 통신이 보도했다.
가르손 판사는 우선 1936~39년 내전 중 실종된 민간인 수만명이 암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19곳의 집단무덤을 발굴해 유족에게 실종자 시신을 찾아 줄 것을 지시했다. 매장지 중 한 곳에는 20세기 스페인의 최고 시인으로 추앙 받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도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공화파를 지지하던 로르카는 내전 초기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방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르손 판사는 판결문에서 "내전 중 실종자의 일가 친척들에게 70년이 지나도록 희생자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고문이며 결국 그들 가족에게도 희생자와 같은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AP통신은 가르손 판사가 쓴 68쪽의 판결문이 스페인 역사의 암울한 시기를 은폐하려는 세력들에 정면으로 맞서 지난 십여년간 계속돼온 진상규명 운동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했다. 내전 희생자 가족들과 성직자들은 지난 10여년간 줄기차게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으며, 지난해 9월에는 내전기간 실종자 13만명의 명단을 가르손 판사에게 제출했다. 가르손 판사는 판결문에 내전 발발 후 1952년까지 최소 11만4,000명이 프랑코 정권 치하에서 실종됐다고 추산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대부분 희생자의 시신을 발굴해 정중히 재매장할 것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로르카 시인의 조카는 현재 상태로 그대로 남겨둘 것을 고집하고 있다. 조카는 로이터통신에 "희곡 <피의 결혼식> 이나 시집 <뉴욕의 시인> 을 남긴 위대한 작가가 어떻게 처형됐는지 미래 세대가 기억해야 한다"며 이장 거부 이유를 밝혔다. 뉴욕의> 피의>
가르손 판사는 시신 발굴에 이어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학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며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과 34명의 고위 보좌진을 혐의자로 판결문에 명시했으며, 처벌을 면하려면 사망신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스페인 내무부 장관에게 프랑코가 이끌던 파시스트 팔랑헤당(黨)의 고위직 명단을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고 BBC통신이 보도했다.
이 판결에 대해 스페인 검찰총장은 즉시 항소의사를 밝혔다. 1977년에 내전 당시 범죄에 대한 사면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누구도 고발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가르손 판사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처벌에는 법정시효도 국경도 제한이 될 수 없다며 완강한 입장이다. 가르손 판사는 1998년 척추 수술을 받으려 영국 런던에 입원해 있던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게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구금해 유명해졌으며, 2003년에는 같은 이유로 오사마 빈 라덴을 기소하기도 했다.
가르손 판사는 BBC에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다르푸르 등을 생각해볼 때 오늘날 세계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너무 쉽게 눈감아주고 있다"며 "이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반인도적 범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은 사회주의 성향의 공화파가 1936년 2월 총선 승리로 정권을 장악하자, 7월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독일 나치가 반란군을 지원했고 소련과 멕시코 정부를 비롯 전세계에서 몰려든 의용병들로 구성된 국제여단이 공화파를 지원하면서 국제전 양상을 비화해 '2차대전의 전초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9년 반란군의 마드리드 입성으로 끝난 내전기간 50만명 이상이 희생됐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이 전쟁에 참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
1975년 프랑코의 사망으로 독재정치가 막을 내린 직후인 1977년 분열방지와 민주주의 정착을 명분으로 사면법이 제정되면서 내전의 비극은 철저히 외면돼 왔다. 하지만 2004년 사회당 집권 후 희생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운동이 본격화했으며, 지난해 12월 희생자 발굴과 유족에 대한 보상 등을 골자로 한 '역사적 기업법'이 발효됐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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