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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헌법 제20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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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헌법 제20조를 위하여

입력
2008.10.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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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이 자리에 쓴 '미친 사랑의 기도'는 근본적 시장주의가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계급에 따라 교육을 분리하는 세태를 비판한 글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글에서 이 천박한 시장지상주의를 이명박 정권 탓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적지 않은 독자들이 그 글을 기독교 비판으로, 더 나아가 이 정권의 종교 편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은 듯하다. 칼럼에 대한 비판적 반응들은 대개 헐거운 호교론(護敎論)을 밑절미 삼아 이 정권을 두둔하고 있었다.

러셀과 도킨스의 기독교 비판

글 첫머리에서 무신론자를 자처한 것이 그런 오해를 낳은 것 같다. 그런데 어차피 이런 오해를 받고 보니, 달갑잖은 계몽주의자 시늉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 에서 했던 그 역할 말이다. 나는 사실, <만들어진 신> 을 읽고 나서 저자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고작 신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중언부언을 마다 않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썼다는 데 비위가 상했다. 도킨스의 능력으로라면 그 10분의 1 분량의 텍스트로라도 무신론을 깔끔하게 옹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만들어진 신> 의 부피가 계몽을 향한 열정보다는 인세 수입에 대한 타산과 더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잠깐 했다.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 굳이 <만들어진 신> 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책보다 (내용이 아니라 두께가) 훨씬 얄팍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정도면 충분하다. 철학자 브라이언 매기는 <칼 포퍼> 라는 책에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포퍼의 마르크스 비판을 읽고 나서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를 흉내내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러셀의 기독교 비판을 읽고 나서도 기독교인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겠다.

러셀의 책 제13장은 '하느님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러셀과 어느 성공회 신부가 BBC 방송에서 한 토론을 옮겨 놓고 있다. 코플스턴이라는 성(姓)을 지닌 이 신부는 대담에서, '종교 없이도 윤리가 가능한가?', 다시 말해 '하느님이 없어도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지침 없이 되풀이하며 러셀을 괴롭힌다.

이 주제는 도킨스의 책에서도 두 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물론 나는 러셀이나 도킨스처럼 그게 가능하다고 여긴다. 나는 신에 기대서가 아니라 내 이성과 경험에 기대어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그 능력은 내가 속한 인류의 진화 단계에 얽매여 있을 것이다.

역사적 기독교가 저지른 죄악들이나 한국 개신교의 '돈 숭배'를 손가락질하며,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지식인들'도 있다. 이들은 '타락한 교회'를 비판하며, 가난하고 핍박 받는 이들의 벗이었던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라고 훈계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부정직하다 여긴다. 20세기에 출간된 가장 강력한 기독교 변증서일 <순전한 기독교> 의 저자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조차 이런 '세련된' 지식인들을 거세게 비판했다.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그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은 자가당착이기 때문이다.

모든 윤리의 바탕은 종교인가?

예수가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고 인간이었다면, 그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약에 묘사된 역사적 예수는 교만하고 우스꽝스러운 미치광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어야만, 그의 기괴한 행적들을 납득할 수 있다. 나는 예수를 약간 별났던 사내로 여기고, 무염수태도 부활도 믿지 않으므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들을 업신여기거나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 조국' 대한민국을 자기들의 신에게 봉헌하려고 헌법 제20조를 짓밟지만 않는다면. 이 정권이 들어선 뒤, 이 조항을 잊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걱정이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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