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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떠날 때는 말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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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떠날 때는 말을 하고

입력
2008.10.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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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쉽게 치유되지 않을 내상(內傷)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동기가 무엇이든 자살은 세상과 사회를 향한 극단적 공격ㆍ비난행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씨의 자살은 아프다. 최씨의 죽음 이후 악플 대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 참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

죽음이나 죽는다는 행동은 세상과의 마지막 소통행위이며, 가장 강력하고 파급영향이 큰 커뮤니케이션의 양식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웰 빙(well being)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웰 다잉(well dying)에는 무관심하거나 관념이 약하다. 한 번뿐인 죽음을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회에 기여한 죽음의 메시지

잘 알려진 대로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불렸던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1994년 11월 대국민 성명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고, "이제 나는 인생의 황혼을 향한 여행을 시작하겠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언제나 찬란한 여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병을 개인의 가정사로 덮어둘 것인지, 공인으로서 알려야 할지 고심하다가 알리기로 결정한 점, 투병사실을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환자들과 그 가정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 점이다.

10년 후 그가 타계할 때까지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은 레이건의 죽음을 함께 살 수 있었다. 그와 절친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같은 병에 걸린 사실이 최근 공개됐다. 영국사회와 영국인들도 이제부터 레이건의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병에 걸린 사실이나 죽음이 임박한 상황은 감추고 알리지 않는 게 보통이며 아무리 중요한 일을 했던 공인이라도 죽음은 그 자신과 가정의 일로 끝나고 만다. 많은 여성들의 롤 모델로 존경 받았던 한 선구적 여성법조인도 치매에 걸려 오래 고생했지만, 아쉽게도 생전의 업적에 어울릴 만한 죽음의 메시지를 남기지는 못했다. 2005년 1월 한강에 투신한 유태흥 전 대법원장(당시 86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었던가. 충격과 궁금증 따위 뿐이었다.

치매에 걸린 부인에 대한 열성적 간호와 검소한 삶이 감동을 주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다 영원한 함묵 속으로 들어갔다. 한국인들은 그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간 경우는 한 사람도 없다. 말하기 거북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이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달 30일 타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버지 김홍조씨는 김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역사상 유일하게 살아 있던 대통령의 아버지였다. 아들이 대통령일 때 한 번도 청와대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언제나 아이처럼 생각했다는 아들에게 전직 대통령으로서 매사에 좀더 신중할 것, 이제 그만 DJ와 화해할 것, 이런 당부를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죽음'은 공공의 추억이다

최종현 전 SK회장은 암 투병 중 아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생명 연장조치를 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최선을 다해 투병하다가 타계했다. 그의 화장은 우리나라 화장문화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좋은 죽음'은 너무나 적다. 1980년대에 한 기업체 회장이 투신하면서 "한 사장, 인간이 되시오"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로서는 절박한 마지막 외침이었지만, 우리 사회로서는 즐겁지 않은 기억이었다.

어느 대학교수로부터 "내 몸은 우리 집안의 공공재이기 때문에 늘 건강에 유의하며 좋은 일을 하려 애쓴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을 빌려서 바꾸면 공인이나 지도자들의 죽음은 사회의 공공재산이며 공공의 추억이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고 완성해 개인의 존엄을 높이고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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