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고 오버만 하는 비호감 여성 캐릭터로 개봉(16일) 전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미쓰 홍당무'. 미쓰 홍당무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막 장편영화에 데뷔하는 이경미 감독과, 제작자로서 첫 발을 내디딘 박찬욱 감독이다.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강렬하고 폭력적인 스타일을 보여준 박 감독과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다룬 이 감독은 도대체 어디서 만나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 두 감독의 세계는 딴판인데 어떤 점이 상통하는가?
▲박찬욱= 상식적인 눈으로, 많이 다르다. 나는 소소한 연애 감정에는 관심도 없고 그걸로 영화 만들고 싶지도 않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만든다. 하지만 통하는 면이 있는데 바로 쓰라린 유머다.
이 감독의 단편영화에서부터 그 능력을 보았고 그래서 함께 작업을 했다(이 감독은 2004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수상작 '잘돼가? 무엇이든'이 심사위원이었던 박 감독의 눈에 들어 '친절한 금자씨'의 연출부에 들어왔다).
- 엉뚱한 여성 캐릭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경미= 2005년부터 시나리오를 시작해 점차 '삽질하는 캐릭터'로 발전시켜 나갔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 스스로 괴로웠고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실감했는데, 그래서 힘 쎄고 노력은 많이 하는데 기술이 없는 미숙이라는 캐릭터가 나온 것 같다.
- 박 감독이 기여한 부분은?
▲박= 공동 작업을 하면 그런 구별이 어렵다. 내 역할은 제작자로서 중심을 잡는 것이었다. 시나리오가 두 왕따 관계가 흔들리기도 하고, 미숙과 서 선생 관계가 너무 집중된 적도 있고, 여러 버전이었다. 어느 날 이 감독이 고쳤다고 해서 읽어보면 고칠 데는 안 고치고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 없어진 거라. "그 장면 빨리 내놔" 그랬다.
▲이= 정말 두려웠다. 캐릭터가 워낙 비호감이어서 시나리오부터 반응이 좋지 않았다. 관객이 너무 싫어하기만 하면 어떡하나 해서 미숙이 목소리가 개미소리 같으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박 감독은 늘 짧고 명쾌했다. "미숙이가 목소리가 크고 흥분하는 게 매력인데 그러면 어떡하냐"며. 박 감독은 늘 관객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잃지 않는 특성이 있다.
▲박= 시나리오를 오래 쓰다 보면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다. 감독이 흔들리게 돼 있다. 그래서 제작자가 필요하다. 나 역시 '공동경비구역 JSA'를 쓸 때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고 버전도 전혀 다르고 결말도 수십가지였는데 당시 제작자였던 심재명ㆍ보경 자매가 꼼꼼하게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무영 감독과 시나리오를 함께 썼는데, 따로 있어도 과격한 사람 둘이 붙었으니 오죽했겠나. 이제야 그때 심 자매의 심정을 알듯하다. 이번에 나는 작품이 밋밋해질 뻔한 것을 "하나도 안 이상하다"고 우겨서 되살려놓은 역할이었다.
- 이 감독 장편 데뷔작인데 시사회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
▲이= 한숨놓았다. 아버지(성우 이완호)가 보시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시며 관객은 네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태어나서 이런 칭찬 처음이었다. 단편으로 상을 받아들고 오면 "너는 과대평가받고 있다" "운 좋은 줄 알아라"고 하셔서 대판 싸움이 났었다.
아버지가 성우 일과 연극연출 등을 하시면서도 딸에게는 대학로나 여의도는 한번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셨고, 멀쩡히 무역회사 다니던 딸이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자 절망스러워하셨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관객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매일 밤 발가벗고 뛰는 꿈을 꾼다.
- 박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나란히 제작자로 후진 양성에 나섰고, 상업적 성공 여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경쟁의식을 느끼나?
▲박= 상업적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작품성이 떨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김 감독과 한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데 내가 제작한 영화가 영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면 어떻게 동네에서 얼굴 보겠나.
- '미쓰 홍당무'의 명장면을 꼽는다면?
▲이= 두 여주인공이 서로 속사정을 모두 알고 나서 계단에서 하소연하는 부분이다. 너무 한심해서 웃기면서 가슴이 아프다.
▲박= (미숙이 자기 사정을 털어놓던) 피부과 의원이 이사 간 것을 보고 경비원이 "다른 피부과 가"라고 하자 "그걸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요?"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다른 어떤 대사보다 신선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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