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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속고' 한글 완역/ '한국 무속의 본질 탐구' 이능화의 학문적 열정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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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속고' 한글 완역/ '한국 무속의 본질 탐구' 이능화의 학문적 열정 오롯이

입력
2008.10.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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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巫俗)이 한국의 고유한 문화로 대접받은 세월은 길지 않다. 유학이 국가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던 고려 말부터 무속은 줄곧 천시와 배척의 대상이었다.

식민에 의해 강제된 근대화 이후, 멸시는 강도를 더해 전통 무속의 맥은 거의 끊어질 뻔했다. 이 시기 이능화(1869~1943ㆍ사진)는 방방곡곡의 무속 자료를 모아 1927년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라는 글을 잡지 '계명(啓明)'에 한문으로 연재했다.

이능화는 무려 125종의 옛 자료를 발췌ㆍ정리했고, 수많은 무당을 만났으며, 중국 일본의 무속과 우리네 것을 비교했다. 문화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한국문화의 연원을 밝히고 보존한 선구적이고 소중한 작업이다.

개화파 이원긍의 아들로 고종6년에 출생한 이능화는 시대의 변화를 일찍 절감하고 유학 대신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1906년에는 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 외국어 전문가 양성에도 참여했다.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에는 학문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 종교와 민속사 연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능화의 이 방대한 작업을 접한 연구자들은 종종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글에 오자와 오류가 무수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글로 번역된 '조선무속고'도 이런 오류를 담은 채 발간됐다.

서영대 인하대 교수(사학)가 최근 출간한 <조선무속고: 역사로 본 한국 무속> (창비 발행)은 이능화가 인용한 원문과 '조선무속고'를 꼼꼼히 교감한 완역주석본이다.

각종 무속 현상의 전체적 모습을 조망하려는 이능화의 의지, 유교적 가치관 속에 매몰돼 버린 우리 무속의 본질과 실체를 밝히는 학문적 노력이 두터운 오류의 층을 뚫고 독자에게 전해진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가 여타의 기록과 차별되는 점은 동기의 순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무속을 샤머니즘의 일종으로 여기고 접근한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과 다르고, 신채호 박은식 최남선처럼 항일운동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국학 연구자들과도 달랐다.

그는 '조선무속고'에서 천연두에 걸렸을 때 행하는 굿의 절차, 출가하지 못하고 죽은 여자귀신과 관련된 무속 등등 우리 무속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역점을 뒀다.

이능화는 또한 각 자료의 신뢰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기 방식대로 분명히 의견을 표출했다. '설단제천(設壇祭天)'에서 단군(壇君)이라는 단어가 비롯됐다고 해석하거나, '궂은날' '궂진일'에서 '굿'이라는 용어의 유례를 찾는 것이 그 예다.

서영대 교수는 " '조선무속고'는 단순한 자료모음집이 아니라 한국종교사, 한국사회사의 학문적 기초를 닦았던 작업"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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