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과 영서를 넘는 큰 고개 중 언제나 그 으뜸에 서는 곳은, 하늘과 맞닿아 '고개 위가 겨우 석자'라는 대관령이다. 실제 높이는 832m로 1,300m급의 정선 만항재나 지리산 정령치보다 낮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대관령은 그 어느 고개보다 높고 크다.
영동의 관문인 대관령을 넘는 길은 3가지다. 터널을 뚫어 가며 시원하게 뻗은 새 고속도로와 이젠 456번 지방도로로 처량한 신세가 된 옛 영동고속도로, 그리고 두 다리로 휘휘 돌아 올랐던 대관령 옛길이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 천년 이상을 옛사람들이 넘나들었던 좁은 오솔길이다.
옛길의 시작은 옛 대관령휴게소 인근의 대관령 성황국사다. 선자령 쪽으로 1km 가량 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면 만나는 산신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강릉 단오제는 매년 이곳 성황국사에서 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강릉인들에겐 유독 각별한 신당이다.
옛 대관령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을 때 바람은 몹시 거세고 차가웠다. 가장 일찍 겨울이 찾아온다는 대관령. 이곳엔 벌써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억새 나풀거리는 길을 따라 성황국사가 가까워질 무렵 징과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산신당의 무속인들이 신과의 대화에 빠져든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해 찾아간 산신당은 곱게 가을로 물들인 산자락에 다소곳이 들어 앉아 있었다. 부채를 든 무녀가 징 소리를 리듬 삼아 겅중겅중 뛰고 있었다. 신과의 간절한 소통이다. 행여 부정탈까 굿 구경을 뒤로 하고 곧장 길을 나섰다.
성황국사 살림채 옆으로 난 오솔길을 올랐다. 이 길이 바로 대관령 옛길이다. 후삼국의 궁예가 명주성을 칠 때 군사를 몰았던 길이고, 신사임당이 율곡의 손을 잡고 고향 강릉을 넘나들었던 길이고, 소설가 이순원이 아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이다.
오르막길은 금세 선자령 능선과 만난다. KT 중계탑 옆으로 이어진 길은 이제부터 저 멀리 동해가 보이는 곳까지 줄곧 내리막이다. 이곳부터 아래쪽 옛 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인 반정까지가 대관령 옛길의 백미다.
급경사의 비탈에 놓였음에도 길은 한없이 유해 오르내리기가 쉽다. 이리 휘고 저리 휘어진 길은 마치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둥글고 깊숙한 홈이 파진 듯 닦여졌다. 벼랑을 휘돌아 내려가는 길은 얼마나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 의해 다져졌는지 깊은 곳은 주변에 비해 한 길이 넘었다.
바닥은 금방 떨어진 낙엽으로 서걱거렸고, 그 낙엽 밑의 땅은 그 전의 낙엽이 썩은 가루로 푹신거렸다. 짐을 진 나귀와 새색시를 태운 가마가 오를 수 있도록 최대한 경사를 뉘여 만든 보드라운 흙길에서 선인들의 지혜와 축적된 시간이 전해져 온다.
인적 드문 길섶은 겨울 날 준비를 하는 다람쥐로 부산하다. 도토리를 문 다람쥐는 도망도 가지 않고 빤히 산행객을 바라본다. 앙증맞은 다람쥐는 그렇게 가을을 파 먹고 있었다.
길 중간중간 벤치가 놓여져 숲에서 명상에 빠져볼 수 있다. 국사성황당에서 2.5km 되는 지점에서 산길은 옛고속도로와 만난다. 이곳 반정에서부터 주막터를 지나 종착지인 대관령박물관까지가 6km다.
아랫길은 윗길에 대면 고속도로다. 서너 명 함께 손을 잡고 거닐 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발 아래 떨어진 가을을 밟고 가는 행복한 산책로다.
■ 여행수첩/ 대관령
●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국사성황당을 거쳐 반정까지는 1시간30분 거리. 반정에서 대관령박물관 까지는 쉬엄쉬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옛대관령휴게소는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나와 찾아가야 한다. 횡계읍내 직전 고가 밑에서 좌회전하면 옛고속도로인 456번 지방도로를 탈 수 있다.
● 옛 대관령휴게소 바로 옆에는 양떼목장이 있다. 뭉실한 초록능선과 하얀 양떼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입장료 성인 3,000원.
● 횡계 읍내에는 용평리조트 덕분에 생긴 맛집들이 즐비하다. 황태요리는 황태회관을, 오삼불고기는 납작식당과 부산식육식당을 알아준다. 부산식육식당은 고기를 굽고 난 뒤 돌판 위에 끓여내는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대관령=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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