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최악'은 지났다고 할 만 하다. 원ㆍ달러 환율은 4일동안 200원 가까이 내렸고 증시에서는 코스피ㆍ코스닥 모두 이틀 동안 너무 올라 거래가 잠시 정지(사이드카)될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최악이 지났을 뿐, 악조건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금융시장은 생사가 걸린 '고통'을 넘기고 이제 긴 '투병생활'에 들어서야 할 처지다.
패닉은 넘겼다
지난달 리먼브러더스 파산신청 이후 국내 금융시장은 한 마디로 이성이 통하지 않는 패닉 장세였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각국의 구제조치들이 잇따랐지만 투자자들은 호재도 악재로 받아들였고, 악재는 거의 사망선고처럼 부풀려 행동했다. 뉴욕 증시가 떨어지는 것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도하는 것도, 은행들의 달러차입이 어려워지는 것도, 평소 같으면 악영향의 정도를 따져 반응했겠지만 이번엔 무조건 내던지고 보는 식이었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전세계 재무장관들이 모인 다음에야 풀렸다. 전세계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지난 주말 입을 모아 공동대응하겠다고 나서고 실제로 막대한 돈을 푸는 모습을 보자 그제서야 믿는 눈치다.
골이 깊었던 만큼, 13일 미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튀어올랐고 유럽과 아시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급반등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금융시장은 속성상 극도의 긴장과 공포를 장기간 견디기 어렵다"며 "결국 폭발하기 전에 스스로 안정의 빌미를 찾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얼마나 좋아질까
금융시장이 어느정도 이성을 되찾았다면 앞으로 얼마나 호전될 수 있을까.
먼저 주식시장. 국내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대략 1,400선 중반까지는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른바 극심한 공포 뒤의 '안도 랠리'다.
코스피지수의 경우, 1,400선 밑으로는 거의 거래조차 없이 급락했기 때문에 매물 공백이 형성돼 있어 기술적 반등이 올 경우 1,400선까지는 큰 저항 없이 반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ㆍ한화ㆍ하나대투ㆍ굿모닝신한 증권은 기술적 반등이 가능한 구간을 1,400선으로, 대신ㆍ대우ㆍ동양종금 증권은 1,450선을 제시했다.
심리적 영향을 훨씬 더 받는 환율은 주가에 비해 예측이 어렵다. A은행 딜러는 "1,100원에서 1,400원까지의 폭등이 외부 충격에 의한 패닉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런 상황이 해소된 상태에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이달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하는 등 호재로 나타나면 환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부장은 "미국이 은행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면 더 이상 나올 정책이 없어 환율이 한동안 1,200원 수준에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며 "더 밀리더라도 실물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감이 있기 때문에 환율 폭등이 초래된 1,150원 부근에서는 하락을 멈출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여전히 첩첩산중
시장의 순조로운 회복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여전히 수두룩하다. 증시의 경우, 우선 15일(현지시각)부터 발표되는 미국 대형 금융기관들의 실적 발표와 조만간 이어질 국내 대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가 관심이다. 예상 밖의 대규모 추가 부실이나 대형 금융사의 붕괴 같은 악재가 튀어나오면 경계심리는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주가 반등시 대량 펀드환매 가능성도 악재다. 우리투자증권은 주식형펀드의 매물대를 분석한 결과, 코스피 1,300∼1,400선에서 최대 4조원의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신증권 조윤남 연구원은 "국내 주가가 짧은 안도 랠리 이후 긴 약세장을 겪은 외환위기 직후의 상황을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 하락 여건도 만만치 않다.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더라도 과거 과도한 선물환 매도의 영향으로 실제 달러화 매물로 나올 수 있는 규모는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상반기 통관기준 무역수지는 57억 달러 적자였지만 선물환 순매도 규모는 584억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로 외환당국이 1,100원대 중반 선에서는 추가적인 환율 하락을 제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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