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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문화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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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문화이발관

입력
2008.10.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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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대방동 구불구불 옛 골목길 문화이발관이 아직 거기 있네

흰 수건을 탁탁 빨아 새하얗게 걸어놓은 집

아침이면 물 뿌린 거기로 제일 먼저 따스한 햇살이 모이고

저녁이면 금성라디오가 잔잔히 흘러 나오던 곳

동네 처녀들 알전구 환한 불빛을 피해 숨어 다녔지

공군회관에선 한때 춤으로 날렸다나

얽은 얼굴이지만 백구두에 씩씩한 맘보바지, 바지런한 손

말할 때마다 거울 속에서 쫑긋쫑긋 웃는 선량한 귀

밤꽃 향기 아래 굵은 팔뚝이 자랑이던 우리들의 영웅

그 짙은 포마드 향기는 다 어디로 갔나

이제는 하얀 중늙은이가 되어

옛 철봉대 아래 그윽이 웃고 있네

문화이발관

퇴락한 이발소에서 은성했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솜씨가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처럼 정겹다. 솥 속에서 김이 나는 흰 수건을 집어올려 걸어놓을 때 나는 소리, '탁탁'은 옛 골목길의 희미한 기억을 재빨리 새하얀 추억의 이미지로 옮겨놓는다.

금성라디오와 백구두와 맘보바지가 소도구로 등장하는 문화이발관은 지난 연대 삶의 이야기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동네 처녀들이 피해다니던 그 특별한 금녀의 구역에는 춤꾼으로 날린 우리들의 영웅이 있고, 라디오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듯 모여든 골목 사람들의 풍경이 있다. 이렇게 이제는 다 잊혀져버린 이야기들에 대한 추억을 통해 삶은 그나마 조금쯤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씩씩했던 맘보바지, 이제는 하얀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문화이발관은 그래서 쓸쓸하지 않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운명 속에서 그에게는 아직 추억할 거리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화이발관, 그곳에 가면 잔디깎기 기계가 지나간 뒤의 잔디밭처럼 내 머리 위에서도 싱싱한 풀비린내가 날 것 같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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