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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3> 막막한 영세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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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3> 막막한 영세상인

입력
2008.10.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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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중구 황학동 서울중앙시장 내 신당지하상가. 입구에 '매월 셋째주 화요일 휴무-지하상가 번영회'라는 팻말이 붙어있지만, 번영회는 지난해 사라졌다. 하도 장사가 안돼 번영회를 꾸려 갈 회비조차 걷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나흘씩 물건 하나 못 파는 경우가 숱해요. 한 달에 개시도 못하는 날이 하는 날보다 많아. IMF 때도 밥 먹고는 살 정도였는데, 애경사에 부조도 못할 형편이니 줄줄이 문닫고 떠나는 게지." 상가가 문을 열 때부터 장사를 해온 70대 상(床) 가게 주인은 빈 점포들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나도 치우고 싶지만 재고 처리를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벌여놓은 거야."

15일 오후 상가를 찾았을 때 99개 점포 중 실제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횟집이 몰려 '회타운'으로 소문난 덕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손님을 받은 횟집을 찾기 어려웠다. 어쩌다 손님이 있는 가게도 한 테이블이 고작이었다.

17년째 횟집을 운영하는 박모(56ㆍ여)씨는 "지금은 제 철인데도 주말에나 좀 손님이 들까, 어떤 날은 개시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물가가 엄청 올랐지만, 음식값 올려 받으면 손님들이 오겠어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거라 임대료가 싸니까 그나마 눌러있는 거지. 여기서 나간들 갈 곳도 없으니…."

썰렁한 상가, 불 꺼진 점포들

경제위기의 직격탄에 영세 상인들이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 조기 퇴직자들에 이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까지 자영업에 몰리며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지 오래 인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탓에 서민들은 얄팍한 지갑마저 꽁꽁 닫아버렸다.

15일 새벽 1시 서울 동대문시장 A상가. '아시아의 패션 메카'를 상징했던 새벽시장의 활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금싸라기 점포'로 불리던 통로 가까운 가게들은 대부분 불이 꺼진 채 옷 벗은 마네킹만 우두커니 서있다.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12년째 여성복을 팔고 있는 현모(48ㆍ여)씨는 "잘 나갈 땐 직원 10여명을 두고 점포 3곳을 운영했는데, 지금은 여기 하나만 남았다"며 "직원도 다 내보내고 지난달부터 혼자 가게를 본다"고 말했다. "난 그래도 나은 편이지. 사채 썼다가 매장 정리도 못하고 도망간 사람들 얘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와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점포 담보로도 대출을 안 해줘 6부, 9부까지 하는 일수 사채를 쓸 수밖에 없어요." 그는 "IMF 때는 백화점 옷 안 입고 시장 옷 많이 입었는데 요즘은 하나를 사도 명품을 찾지 않냐"면서 "게다가 중국산 탓에 중저가 옷값은 더 떨어져 팔수록 손해가 나는 게 이 장사"라고 한숨지었다.

새벽시장 한파에 인근 음식점들도 떨고 있다. 예년 같으면 대낮같이 불 밝히고 설렁탕, 해장국을 끓여대기 바빴을 새벽 2시, 대부분의 음식점들 문이 닫혔다. '24시간 영업'간판을 단 해장국집도 마찬가지. 손님이 뚝 끊겨 문을 열어놓아 봐야 인건비나 전기료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음식점들 문닫는 시간이 새벽 4시에서 3시, 2시로 당겨지더니 요즘엔 자정까지만 영업하는 집도 많다"고 했다.

"탈출구가 안 보여요"

경기 성남시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조모(35)씨는 이달 말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2005년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그만 둔 뒤 횟집을 냈는데 처음엔 장사가 잘 돼 개업 때 진 빚도 다 갚았다. 그러나 목 좋은 가게도 불황을 비켜갈 순 없었다. "종업원 없이 아내와 죽기 살기로 매달려도 매달 적자만 쌓여가죠. 다시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고달픈 직장인들이 쉽게 내뱉는 말이지만, 자영업자들의 삶은 더 고달프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 자영업자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370만원으로, 임금근로자(2,569만원)의 53.6%에 그쳤다.

자영업자 대부분이 영세한 저소득층이어서 여기서도 퇴출될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최모(37ㆍ여)씨는 2년 전 이혼 후 경기 의정부시에 조그만 분식집을 냈다가 1년 만에 접었다. 현재 벌이는 간간이 나가는 식당 일과 건물 청소를 해 받는 월 70여만원이 전부. 초등학생 딸(10)의 사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 나이에 정식 일자리를 찾기가 쉬운가요? 다시 장사를 해보려 창업지원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녀봐도, 자본금이 있는 것도, 별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외면 받기 일쑤죠."

벗기 힘든 자영업의 굴레

이모(37)씨는 PC방 창업만 두 번째다. 2005년 서울 노원구 지금의 자리에 가게를 열었다. 사실 개업 전에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미 4년간 PC방을 운영해본 터라 수지타산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억원 들여 시작한 PC방의 현재 손익계산서는 1,200만원 적자. 얼른 가게를 접고 취업시장을 노크했다. "취업박람회도 기웃거리고, 지인의 소개로 공구용품 회사 면접도 봤지만 월급쟁이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이씨는 지난 주 PC방을 인터넷 매매 사이트에 내놓고 다시 업종 갈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횟집 폐업 절차를 밟는 조씨도 솔직히 자영업의 굴레를 벗어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전공한 화학 분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경제가 말이 아닌데, 저보다 학력 떨어지고 장사밖에 해본 게 없는 사람들은 더하겠지요. 자본금을 까먹는 걸 알면서도 다시 무슨 장사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요."

■ 폐업 컨설팅

"작년엔 90%가 창업 상담 방문 지금은 절반이 폐업 상담입니다"폐업컨설팅社 4~5년 전보다 3~4배 늘어…"생존 몸부림 끝 막판 몰린 자영업자 급증"

"작년 이맘때만 해도 90%는 창업 상담이었는데, 지금은 절반이 폐업 상담입니다. 그만큼 자영업자들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얘기죠."

2003년부터 폐업 컨설팅을 시작한 고경진창업연구소의 고 소장은 "지난달 전체 상담 300여건 가운데 150건이 폐업 상담이었고, 요즘도 하루 10여건씩 폐업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폐업 컨설팅은 기존 영업을 접고 업종을 변경해 재창업 하는 것을 돕는 일도 아우르지만, 요즘 상담자들은 수 년간 3,4번씩 업종을 바꿔가며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 결국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어 '진짜' 폐업을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고 소장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자영업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업종은 특별한 노하우도 필요 없고 자본도 적게 드는 소규모 주점"이라며 "요즘 주점을 하다 폐업 하겠다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고 전했다. "이런 분들은 이제 그야말로 실업자가 되거나, 막노동 같은 저임금 근로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 소장은 현재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업소 하나가 문을 열면 기존 업소 1, 2개는 문 닫아야 할 만큼 자영업 시장이 포화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실업률을 낮춘다는 취지로 소상공인 지원 등의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을 대거 양산 한 탓도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 98년 고 소장이 한 방송사와 함께 진행한 TV 창업 프로그램의 주인공 32명 가운데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초보 자영업자들에게 노하우를 전하고 리모델링도 해주면서,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물론 당사자들이 장사 수완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죠. 하지만 음식점이나 슈퍼마켓은 프랜차이즈나 대형 마트 때문에 설 자리를 다 잃어버렸고, 의류나 공산품 가게는 온라인에 밀렸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가게도 최근 물가가 워낙 오르고, 불황으로 손님들이 뚝 끊기니 견딜 재간이 없는 것이죠."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대신 폐업 컨설팅 업체들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고 소장은 "폐업을 도와주는 업체가 4, 5년 전보다 3~4배 급증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는 망하고, 폐업 컨설팅은 호황을 누리는 것이 지금의 경제불황을 딱 보여주는 대목 아니겠습니까."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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