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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1> 10년의 절망 IMF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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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1> 10년의 절망 IMF학번

입력
2008.10.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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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층 빌딩 외벽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 오르내리며 방사선으로 철골구조 안전검사 일을 하는 강모(34세)씨는 요즘 불면증이 도졌다. 4개월 만에 또다시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1998년 그는 금속업체를 다니다 실직을 당했다. 아버지 빚 때문에 저축을 다 날렸고, 신용카드 돌려 막기로 버티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주는 대로 받겠다고 해도 신불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배가 고파 헌혈만 60번을 했고, 73kg이던 체중은 47kg으로 줄었다. 2004년 밀폐용기 제조회사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매출감소로 2년 뒤 다시 거리로 나와야 했다. "지금 제 월급이 200만원인데, 제가 올린 매출은 130만원 밖에 안됩니다. 이 회사에서 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1997년 외환위기 직전만해도 안정된 은행원이었던 김모(52세)씨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IMF 퇴출'의 칼바람을 맞은 김씨는 퇴직금 등 2억5,000만원으로 한식 음식점을 시작했지만 2년여 만에 정리해야 했다. 남은 건 보증금과 권리금 8,000만원. 다시 치킨점을 차렸지만 조류독감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나마 건진 3,000만원에 대출을 보태 6,000만원으로 재개한 업종은 막걸리 전문점. 그러나 최근 불황으로 폐업을 하고 부인은 파출부, 자신은 택시기사를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리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불황이 저소득 서민들을 또다시 악몽 같은 'IMF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금이 10년 전보다 오히려 더 힘들다. 또다시 실직과 폐업의 허허벌판에 내몰린다면 이제는 정말 일어설 기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버는 것보다 쓸 곳이 더 많은 적자가구는 이미 6년 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올 2분기 적자가구비율은 네 집 중 한 집 꼴인 28.1%에 달했다. 벌이가 급등한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못사는 하위 20% 가구는 매달 버는 것에다 38%는 빚으로 더 메워야 생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저소득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불황은 아직 서막에 불과하다. 수출이 줄고 자금줄이 막힌 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소비를 줄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저소득 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누구보다 칼날 위에 선 사람들은 10년 전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나와 창업으로 살길을 찾았지만, 결국 영세 자영업자로 전락한 수많은 IMF 퇴직자들. 10년 전에는 퇴직금이라는 재기의 밑천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자영업에서조차 퇴출되면 곧바로 빈곤층이다. 이들의 빈곤층화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폐업한 음식점만 전국 3만609곳, 휴업한 음식점은 8만9,144곳에 달했다.

참혹한 취업난과 구조조정의 살벌함을 겪고 이제야 겨우 얄팍한 기반의 끝 자락을 잡은 IMF 직후 졸업 세대 역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30대 중반인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도 없을 뿐더러, 이들 스스로 이제 더 이상 버텨낼 의욕조차 없다.

불황의 그림자는 빈곤가족 전체를 한계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생활고에 몰린 기혼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여성경제활동인구는 지난 8월 기준으로 1년 사이 5만5,000명이 늘었고, 서울의 결식아동은 4만 명을 넘어섰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번 경제침체로 빈곤층이 더 늘어나고, 기존 빈곤층은 극빈곤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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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란까지 겪고 살만한가 싶더니 또…" 젊은 아빠들이 운다

회사원 황모(36)씨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분양 받은 아파트 중도금 기일이 곧 닥치는데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서울 뉴타운 지역에 24평 아파트를 분양 받았을 때만 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들떴다. 7년간 월급을 쪼개 부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을 타 계약금을 내고 남은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1,500만원을 넣은 중국펀드는 반토막이 났다. 직접 투자한 주식은 원금의 70% 가까이를 까먹었다.

지금까지 4번의 중도금은 대출을 받아 넣었지만, 나머지 2번의 중도금은 더 이상 대출도 안 된다. 내년 초면 전세도 만기가 돌아오는데, 얼마나 더 달라고 할지 걱정이다. "연체가 되기 시작하면 신용도도 낮아지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질 텐데…." 황씨는 "대학 졸업하던 10년 전의 끔찍했던 시절이 자꾸만 꿈에 나타난다"고 했다.

짓눌리는 삶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며 30대 초ㆍ중반 이른바 'IMF 학번'이 다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한복판에 맨발로 서야 했던 이들이 10년 만에 다시 겪는 벼랑 끝 삶의 공포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더 크고 깊다.

"이제 좀 살 만해지나 싶었는데…." 황씨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98년 2월. 그 해 아버지는 회사 구조조정에 밀려 명예퇴직을 했다. 뽑아주는 곳이 없어 1년간 막노동으로 버텨야 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회사 사정이 괜찮은지 항상 촉각이 곤두서요.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 가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똑똑히 봤으니까요."

이들이 악화일로의 경제 상황에 특히 민감한 것은 내 집 마련이나 육아 등으로 경제력에 대한 욕구가 어느 세대보다 강한 탓이다. 더구나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몇 억 만들기'로 대표되는 재테크 열풍 속에서 살아왔다. 황씨는 "집값 폭등을 목도하고 대출로 무리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고, 이걸 갚으려고 주식이나 펀드로 돈을 굴리는 게 우리 세대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99년 대학을 졸업한 강모(35)씨도 2년 전 서울 강서구에 3억원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

강씨는 "절반은 대출 받고, 그래도 부족한 돈은 아내가 신용대출을 받았다"며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자부담이 갈수록 늘어 수입의 절반을 이자로 내야 해 생활이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윤모(33)씨는 아이들과 더 이상 놀이공원에 가지 않는다. 영화관 가본 지도, 커피를 사서 마셔본 지도 오래다. 자가용도 늘 집 앞에 세워져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게 눈에 보여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 하청업체에 다니던 아버지가 구조조정으로 퇴사한 뒤 윤씨는 아버지와 생필품 노점상을 하며 간신히 졸업했다. "또 다시 그렇게 힘겨운 시절이 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요."

이들은 "그나마 아직은 회사에 붙어있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만난 실업공포

13일 오후 서울의 한 종합고용지원센터의 실업급여 교육장. 하루 두 차례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급 절차 등을 교육하는 곳이다. 150여 좌석을 꽉 채운 '교육생'의 절반 가량은 30대로 보일 정도로 연령층이 낮다. 최근 명예퇴직 했다는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대출이자도 다 낼 수 없는 돈이지만 이거라도 받기 위해 신청을 했다"며 "한참을 건물 앞에서 머뭇거리다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내 또래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아직 젊다는 이유로 IMF 학번들은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기도 쉽다. 물류회사에 다니던 아내가 최근 경기 탓에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최모(34)씨는 "혼자 벌어서는 대출이자 내기도 버거워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차라리 집을 팔고 부모님 집에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전쟁 같은 취업 전선에 내몰린 이들은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버겁다. IMF 한파를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올해 초 돌아온 조모(33)씨는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지방의 한 법대를 나온 조씨는 취업이 안돼 2000년부터 2년 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다 영어라도 잘해보자는 생각에 미국행을 택했다. "6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어렵게 경험을 쌓았는데도 취업이 어렵네요. 이제 나이 때문에 원서를 내도 면접까지 가지도 못합니다." 조씨는 "경기가 더 나빠질 거라고 해서 걱정"이라며 "한 달에 한 두 번 친구들과 외식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생활 정도가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2000년 졸업한 김모(31ㆍ여)씨도 7,8곳의 회사를 옮겨다닌 끝에 다시 구직에 나섰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다. 김쓴?취업사이트에 한 군데도 빠짐 없이 이력서를 내고 취업공고를 놓치지 않고 매주 2,3곳씩 지원하고 있다. 김씨는 "대학 졸업 때보다 요즘 취업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종합고용지원센터의 유연희 팀장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30대 초ㆍ중반 젊은이들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많아졌다"며 "경제 사정이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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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받은 'IMF 학번'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렸던 1998~1999년 대학 문을 나선 이른바 'IMF 학번들'은 그때도, 그리고 그 이후도 가장 불운한 세대였다. 90~94학번, 현재 나이 32~36세, 30대 초ㆍ중반이 바로 그들이다.

극심한 취업난, 자르고 줄이고 무너지는 혹독한 구조조정, 반짝 일었던 벤처 붐에 이은 거품의 붕괴, 월급만으로는 평생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집값 폭등…. 지난 10년 한국경제의 어두운 응어리는 죄다 짊어져야 했던 버림받은 세대다. 그리고 지금, 아직 생활의 기반이 채 잡히기도 전에 이들에게 또다시 불황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허허벌판에 던져졌다. 해마다 4~5월이면 삼성 현대 LG 대우 등이 수 천 명씩 대규모 그룹 공채를 했지만, 98년 상반기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은 사실상 전무했다. LG만 겨우 300명을 뽑았을 뿐이다. 그 해 20대 실업자만 52만6,000명. 97년(27만1,000명)의 2배였다. 이듬해인 99년에도 20대 실업자는 45만2,000명에 달했고, 2000년 들어서야 30만명대로 줄었다. 이들 IMF 학번은 청년실업 1세대였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의 기다림 끝에 취업을 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 99년 하루 평균 18개의 법인이 부도 났고, 그 해 말에는 '세계경영'을 외치던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애써 들어간 기업이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으면 자르고 내보내는 혹독한 구조조정이 수년간 이어졌다. 동아건설 거평 한일 등 문 닫는 대기업이 속출했다.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 인턴을 뽑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인턴이 끝나면 또 실업자였다. 2000년 벤처 붐을 타고 수많은 벤처기업이 생겼지만, 1년 여 지나 그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시 취업전선에 나서야 했다. IMF 학번은 그렇게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IMF 학번이 30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2002년 그들 앞에는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고 막 가정을 꾸릴 즈음,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07년 딱 2배가 되었다. 전셋값도 올랐고, 급기야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전세 아파트 얻기조차 어려워졌다. 이들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월급 한 푼 두 푼 모아서는 평생 셋방살이를 벗어나기 힘든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IMF 한파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들이 또다시 구조조정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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