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화권의 음식이 다른 문화권에 뿌리를 내려 발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먹어 온 식재료가 다르고, 간이 다르고, 먹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식습관의 차이를 극복한다 해도, 선입견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그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두 문화권의 메뉴가 하나 되어 발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두 문화권 맛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을 이뤘을 경우가 크다. 맛이란, 강요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다.
■ 마카오의 포르투갈 음식
마카오를 가는 방법에는 하늘길과 바닷길이 있다. 어느 경로를 통하든, 땅에 발을 디디면 도시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진다. 홍콩을 통해 갈 경우, 홍콩에서 내내 맡았던 오리 육수 고는 냄새가 더 이상 안 난다. 서울에서 직항 비행기를 탔다면 무언가 오묘한 육수 냄새, 향신료 냄새가 나기는 한다.
도시마다 갖는 고유의 공기와 향취가 있지만, 마카오의 공기가 뿜는 냄새는 무어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렵게 독특하다.
그 독특한 냄새는 오래된 성당의 벽에서, 시민들의 살결에서, 에그 타르트를 굽는 가게에서, 포트와인(포르투갈 산 와인으로 대부분 달착지근하며 알코올 도수는 18도 내외)을 파는 바에서, 온갖 육류와 가금류의 육포를 구워 파는 노점에서 고루 풍겨 나오는 냄새의 집합체다.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이유는 마카오가 동, 서양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일까.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모이는 세나도 광장이나 1800년대에 불탔지만 기적같이 벽 하나가 온전히 남은 성 바오로 성당을 벗어나 슬슬 걷다 보면, '쏠마르(Solmar)'라는 식당이 보인다.
1961년부터 그 자리에서 '마카오식 포르투갈 요리'를 만들고 있다. 일흔이 넘으신 지배인 할아버지는 쏠마르의 역사를 증명이나 하는 듯, 아직도 정정하게 테이블을 챙기신다.
대표적인 요리는 닭, 아프리카 새 요리 그리고 스테이크. 특히 냄비채로 나오는 닭찜은 이곳의 별미다. 이베리아 반도를 스페인과 나눠 쓰고 있는 포르투갈. 언어나 음식이 스페인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기에 더욱 궁금한 맛의 포르투갈 요리는 소시지나 올리브로 향미를 돋운 고기 요리가 맛있다.
쏠마르의 닭찜도 그러한 조리법을 따르는데, 뭉텅 썰어 넣은 감자랑 부위별로 넣어 끓인 닭고기가 사기 냄비에 담겨 나온다. 언뜻 보면, 도리탕과 닮았다. 다만, 향신료와 기름, 야채와 닭을 볶다가 물과 육수를 붓고 달달 끓인 후 오븐에서 마저 익혀 나온다는 마무리가 다르다.
식탁에 오른 뒤에도 국물이 뜨끈하다. 닭을 베어 물면 양념이 충분히 배도록 잘 익어 쫄깃하면서도 싱겁지 않은데, 블랙 올리브와 숙성시킨 소시지를 넣어 끓여서인지 깊은 풍미가 있다.
여기에 마카오식으로 밥을 곁들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밥이 아닌, 후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맛의 동남아 쌀밥. 개인 접시에 밥을 좀 덜고, 뜨거운 감자를 밥 위에 얹어 으깨고 국물을 슬쩍 비벼 먹는다. 가벼운 것 같지만 흔한 맛이 아니고 달콤한 것 같지만 서늘한 매력이 있는 포르투갈 산 레드와인을 곁들이면 맛은 완성된다.
닭요리 말고도 생선 살을 곱게 갈아 으깬 감자와 섞어 빵가루에 튀겨낸 '피시 볼' 역시 별미다. '고로케'와 닮은 맛인데, 감자랑 포실포실 갈아 넣은 생선 살이 어울려 그 맛이 한없이 부드럽다.
■ 한국의 자장면
아, 자장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자장면은 중식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지만, 중국식이기도 한국식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중식 레스토랑에서도 '블랙빈 소스(black bean sauce)'에 비빈 국수나 요리를 먹을 수는 있지만, 한국에서 맛보는 자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자장면의 변천사나 그 다양한 스타일에 대해 논하자면 사전 한 권 분량에 이를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자장면을 먹어 온 역사가 길다. 지방 여행을 다니며 맛을 들인 중국집이 도시마다 있다는 것은 나의 자랑거리. 45년 된 제주도의 아주반점이나 부산 초량동의 일품향에서 먹는 자장면 한 그릇은 오래 묵은 술 한 잔 마시는 것과 비슷한 감상을 안겨준다.
몇 십년째 같은 농도, 같은 간으로 볶아 온 자장에 매끈한 면을 비비면 짭짤하고 고소한 풍미가 입 안을 채운다. 요즘에야 자장면이 분식처럼 달아졌지만, 옛날 자장 제대로 하는 집을 찾아가 먹어 보면, 춘장 맛이 깊이 올라오면서도 담담하고 식용유에 볶은 듯 번들거리지 않아 그 맛에 물리지 않는다.
입이 터지게 후룩거리며 먹다가, 고운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홍초를 조금 더하거나, 차갑게 썬 오이채를 얹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중국집에서 먹는 한국 맛, 최초의 퓨전 메뉴가 우리의 자장면이다.
이 밖에 일본 음식의 주류로 성장한 '경양식'도 따져 보면 두 문화권이 만나 이뤄낸 맛이다. 도쿄 긴자에 위치한 낡은 경양식집 '렌카테이'는 일본 경양식의 원조라는 소리를 듣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서 그 메뉴를 100년 넘게 만들고 있다.
오므라이스, 하이라이스 등이 주 메뉴. 간장과 왜된장이 기본 간을 이루는 일본 음식의 전형이 아닌, 버터와 생크림과 토마토 소스가 기본을 이루는 '경양식'도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당당히 '일본식'이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마카오의 포르투갈 요리, 한국의 자장면, 일본의 경양식처럼 두 문화권이 섞이도록 오랜 세월 살아 남은 요리는 버텨온 시간만큼 그 맛과 내공이 보장된다.
음식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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