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인천 중구 송월동 달동네의 허름한 상가 건물 한켠에 자리잡은 '그루터기 지역아동센터.' 소외계층 어린이들의 무료 공부방이다. 이곳에서 '왕엄마'로 불리는 김인숙(55) 책임교사가 깔끔하게 수리된 부엌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큰 걱정거리가 해결됐어요. 깨끗한 부엌을 갖춘 뒤로 아이들이 어찌나 밥을 잘 먹는지….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더 맛있다고 한답니다. 표정도 더 밝아졌고요."
4개월전만 해도 이 센터의 주방바닥은 늘 물투성이였다. 하수구가 역류해서 주방은 금세 홍수를 이뤘고 식당에 까지 넘쳐흘렀다. 거의 물난리와 다름 없을 정도다. 일반 가정 부엌에 맞춰 설계된 하수구라 식구들이 몇 안될 땐 그럭저럭 버틸 만 했지만, 아이들이 6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이 같은 일이 부쩍 늘었다.
"수리공을 불러 뚫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배관 확장공사 마음이야 굴뚝 같았죠. 헌데 빠듯한 살림에 그럴 수가 있어야죠. 그러던 중에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업무단지를 개발하는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에서 무료로 집수리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죠. 운 좋게도 우리가 첫 수혜자가 됐어요."
부엌 하수배관 확장 외에도 너저분했던 바닥, 어린이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했던 화장실도 깔끔하게 단장됐다. 특히 한 여름에 에어컨을 켜기만 하면 두꺼비집 차단기가 내려가 다른 전기 기구를 꺼야 할 정도로 불안정했던 전기 수급 문제도 해결됐다.
"매일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기본 비용만 해도 빠듯한데, 바닥을 뜯어야 하는 대형 공사나 전기 공사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해맑은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도 걱정 탓에 맥이 빠졌죠." 김 교사는 다른 법인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시설 특성상,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가 겪는 어려움이라고 했다.
올해로 15년째 무료 공부방을 운영해온 김 교사는 "부모가 맞벌이를 해도 학원에 다니기 힘들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불러 앉혀 공부를 시키고, 떡볶이 실력 발휘해서 간식으로 내놓는 게 전부"라고 했지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늘어만 갔다. "시설이 좁아 이들을 되돌려 보낼 때가 가장 안타깝죠."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는 법. 이 공부방이 2005년 지역아동센터로 정식 인가를 받으면서 '숨통'이 틔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현재 초등학생부터 고교 1학년까지 60여명의 학생들이 방과 후 이곳에 들러 공부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밤이 깊어 걸어서 귀가하기 곤란한 경우엔 자선단체가 지원한 차량도 제공한다. 수강료가 비싼 여느 학원, 어린이집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이게 봉사인지, 복지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지만, 15년이 흘렀다면 이제 힘에 부칠 법도 했다. "힘에 부치기는요. 이게 제 생활인 걸요. 더구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찾아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니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딱히 없는 셈이지요."
실제 이 공부방 교사 10여명이 대부분이 대학생 봉사자들이다. 간혹 동네 노인들이 한문 등 젊은 교사가 가르치기 어려운 과목들을 맡아준다. 부엌 조리 일도 자원봉사 아주머니들 몫이다.
특히 대학생 봉사자들은 과거 이 공부방을 거쳐 간 이들이어서 누구보다 헌신적이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들이죠. 교실에선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그 외 시간에는 형, 누나, 오빠, 언니가 된답니다."
자원봉사 대학생 박희완(27)씨는 "고교 1학년 때 도움을 준 공부방을 잊을 수 없어 군 전역 후 합류했다"며 "열심히 가르치는 만큼 아이들의 성적이 오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 교사는 "물심양면으로 돕는 이웃과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공부방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와 독서교실에 이어 최근 바이올린교실도 개설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이 때를 놓치면 평생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활 쥐는 법, 악보 읽는 법 등을 가르치며 바이올린을 실제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직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도움을 준 분들을 위해 장차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 속의 작은 중국'으로 불리는 차이나타운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중국어 조기 학습반'도 만들 계획이다. 이미 중구청과 협의를 끝낸 상태다. "'조기 유학'이나 '과외'가 딴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는 동네지만, 꿈이 없다면 더 암울할 거예요. 지켜 봐주세요. 어디 아이들보다 더 밝고, 씩씩하게 자라서 우리 사회의 기둥이 될 테니까요. 또 이게 도와주신 분들과 단체, 기업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 '나눔의 활동'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올해 6월부터 'G-스피릿(Spirit)'이라는 사회책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나눔의 정신'을 기치로 '영어'와 '친환경', '고용증진' 등의 테마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그루터기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공공시설과 소년소녀 가장 가정을 고쳐주는 '그린하우스(Green House)', 지역아동센터가 양질의 영어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커리큘럼 및 교사를 지원해주는 '갓 잉글리쉬(Got English)', 인천소재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 '그레이트 스칼라(Great Scholars)' 등이 대표적이다.
8월 26일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우수한 학업성적을 보인 12명의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밖에 원어민 판매자들이 영어로 상품을 팔고 그 이익금을 공공기관에 기부하는 '굿윌 마켓(Goodwill Market)', 중고 컴퓨터를 개조한 뒤 인터넷을 연결해 공공시설에 기부하는 '고 온라인(Go Online)', 인천 방문의 해를 맞아 인천관광공사와 함께 인천을 세계에 알리는 대학생 해외원정 프로그램 '글로벌 앰배서더(Global Ambassadors)' 등도 진행하고 있다.
그린하우스 집수리 프로그램을 통해 11개 가정 및 시설이 깨끗하게 고쳐졌고, 7월에 진행된 글로벌 앰배서더는 30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1주일간의 원정을 성공리에 끝냈다.
게일 인터내셔널의 스탠 게일 회장은 6월 23일 사회공헌 프로그램 발대식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선의(Goodwill)를 지니고 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표현되지 않을 뿐"이라며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자"고 강조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비록 외국기업이지만, 인천지역의 시민기업으로서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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