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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사과'

입력
2008.10.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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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달콤함에 젖어있는 연인들에게 이 영화는 각성제나 다름없다. 한편으로 사랑이 남긴, 숙취 같은 비루한 일상에 당황스러운 남녀라면 이 영화에서 냉혹한 현실의 한 자락을 목도할 것이다.

16일 개봉하는 '사과'는 사랑의 판타지를 과대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이들이 본능처럼 지닐 수밖에 없는 사랑에 대한 과대망상을 깨뜨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급작스레 이별을 통보하고, 여자는 자기를 따라다니던 다른 남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남편의 생활방식에 실망하고 새로운 삶을 탐색한다.

TV단막극 등에서 익히 보았음직한 이야기다. 더군다나 '사과'는 2004년 11월 크랭크업한 지 4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묵은 영화. 그 사이 주연 문소리는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영원을 맹세한 사이가 됐고, 충무로의 유망주로 거론되던 이선균은 뭇 여성들의 눈길을 받는 훈남 스타가 됐다.

스크린 속 배우들의 모습이 다소 앳돼 보일 정도로 시간이 흘렀고, 관객을 놀라게 할 반전을 택하지도 않은 내용이지만 '사과'는 신선도를 잃지 않고 지리멸렬한 사랑의 현실을 반추하게 만든다.

수없이 반복되고 지겹도록 변주돼도 언제나 새롭기만 한 사랑의 운명을 다뤄서일까. 사랑의 시작과 변질과 퇴락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스크린에 불러냈음에도 영화는 사랑의 본질처럼 낯익은 신비감을 전달한다.

남녀의 뺨을 붉게 물들이는 설렘의 순간, 늘 실존이 낭만을 앞지르는 결혼생활의 무료함과 무기력함 등 남녀관계의 면면을 집요하게 비춰내는 연출이 돋보인다.

그리고 연출 의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중량감을 발휘한다. 강이관 감독의 데뷔작으로 2005년 토론토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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