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집어 삼키고 있는 금융위기가 두 지도자의 명암을 바꾸어 놓았다.
10% 대의 사상 최저 지지율에 한달 전만 해도 '정치적 사망'을 논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던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은행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위기 관리형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대서양 건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조타기를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맡겨둔 채, '데드 덕(Dead-Duckㆍ레임덕을 넘어선 심각한 권력공백)'에 시달리고 있다.
양치기 소년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부시 대통령은 10일 경제위기 관련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다나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 발표 전 "금융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 국민을 안심시킬 것"이라고 했지만 이 성명이 미국인의 불안을 잠재우리라고 보는 이는 없다. 부시 대통령은 22일간 무려 열 아홉 번이나 경제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프린스턴대학 역사학과의 쥴리앙 젤리저 교수는 US뉴스앤월드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대부분이 그를 양치기 소년으로 여기고 있다"며 "신뢰를 잃은 대통령에게 여론 장악력이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경제 위기 속에서 부시는 선장 노릇을 포기한 지 오래다. 이 역할을 대신하는 이는 폴슨 장관이다. 일간지 하트퍼드 쿠란트는 "2002, 2003년 이라크전에 대한 국회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하던 부시의 모습과 비교된다"고 했다. 지난 달 29일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로 하원에서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될 당시 그의 무력함은 극에 달했다. 협조를 구하며 의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한 이는 폴슨 장관이었다.
학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대공황 당시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비교한다. 역사학자 오버트 댈렉은 "후버가 경제를 망친 것은 시장의 자정능력을 믿는 자신의 이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부시는 그조차도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는 영국을 따르라
영국 텔레그라프는 10일 "브라운 총리는 가능할 때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인디펜던트는 브라운이 정치적 황금기를 맞았다며 그를 '골든 브라운'이라고 칭했다. 브라운 총리는 8일 공적자금 500억 파운드를 투입, 영국 8개 주요은행을 부분 국유화하기로 하는 등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나아가 10일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다른 국가도 위기에 처한 은행을 영국처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며 전 세계를 향해 영국 방식을 따르라고 큰소리쳤다. 9일 영국 GMTV와의 인터뷰에서는 "책임감 없는 은행 직원은 처벌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위기의 선봉장 역할을 해 내고 있다.
실제로 미 재무부가 위기에 빠진 은행의 부분 국유화를 검토하면서, 미국이 영국 방식을 따르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브라운 총리의 지지율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브라운 총리의 위기 대처는 영국만의 금융 현실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디펜던트는 "영국 은행은 미국 은행처럼 파생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대출도 많지 않기 때문에 국유화가 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때 여당 지도자 자리마저 위태로웠던 브라운 총리는 야당으로부터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빈스 케이블 자유민주당 대변인은 "영국의 대처방식이 미국보다 훌륭했다고 본다. 전에는 미국인이 영국인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반대"라고 말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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