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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밤의 문화사' 해방과 재생의 시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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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밤의 문화사' 해방과 재생의 시간 '밤'

입력
2008.10.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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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커치 지음ㆍ조한욱 옮김./돌베개 발행ㆍ560쪽ㆍ2만5,000원

"인간 역사의 절반은 대개 무시되어 왔다."

오랜 세월 밤은 단지 낮이 묻혀버린 무의식의 공간이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면 인간의 언어와 문화, 법칙, 나아가 인간이라는 실존 자체가 자취를 감췄다. 영국 시인 토머스 미들턴은 "잠자고 먹고 방귀 뀌는 것밖에는 아무 일도 없던" 시간으로 밤을 묘사했다. 이 책 <밤의 문화사> 는 그런 두터운 고정관념의 전복을 꾀한다.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유럽의 밤들을 파헤친다. 중세 말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숱한 어둠의 시간들이 저자가 들이대는 등불 아래 그 속을 드러낸다. 권두에 붙은 '하느님께서 빛을 어둠과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라는 창세기 구절이 밤의 복권을 꾀하는 저자의 의도를 함축해 보여준다.

자칫 잡다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흐를 수도 있는 주제가 뼈대를 갖춘 것은 방대한 사료를 재구성한 저자의 공력 덕이다. 험프리 오설리번과 에밀 기요맹의 19세기 저작에서부터 18세기의 신문과 잡지와 소설, 그리고 편지와 회고록, 여행기, 일기 같은 개인적 문서들까지 샅샅이 뒤져 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책 속에 실었다.

저자는 죽음의 그림자, 자연의 법칙, 밤의 영토, 사적인 세계라는 네 갈래 틀로 밤의 실체를 구성한다. 전반부 두 주제는 밤의 위험과 거기 대응한 문명의 시스템을 다룬다. 3부는 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완화된 후 일과 놀이의 공간이 된 밤을 비춘다. 마지막 장은 밤이 각 사회계층별로 갖는 다면성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어둠이 내리면 권력이 강한 자에게서 약한 자에게로 옮겨간다는 사실이다.

풍부한 사료를 통해 수많은 의문을 헤쳐가는 프로젝트의 목표는 밤의 탈신비화, 그리고 '해방과 재생의 시간'으로서의 밤의 존재가치를 밝히는 것이다. 저자는 "밤 시간을 그 자체로서 연구해야 할 이유에 대해 충분한 정당성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머리말에 적었다. 밤이 지닌 생동적인 문화를 전해줌과 동시에 '낮의 연장선'이 돼 버린 현대의 밤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는 책이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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