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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깊은 독서, 넓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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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깊은 독서, 넓은 독서

입력
2008.10.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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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표현을 두보가 시에 인용해 유명해진 '오거서(五車書)'란 말은 다독을 권하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섯 수레의 분량이 정확히 얼마를 뜻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말이 오늘날의 '넓은 독서'만을 얘기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간행된 죽간의 범주와 그 양을 고려할 때 오거서는 당대 지식의 총량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두보의 시대에 책 읽기란 요즘으로 치면 압축파일을 풀어내듯 한 권 한 권 정독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니, 당시 독법의 모범인 '위편삼절(韋編三絶)'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오거서는 '깊은 독서'와 '넓은 독서'를 함께 강조하며 지식인의 마땅한 자세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인과의 대화에서 이제 곧 외장 하드디스크나 메모리를 직접 뇌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시대가 오지 않겠냐고, 막 시작된 이 세기를 반도 살기 전에 기술이 우리를 압도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오가곤 한다. 그리 되면 죽어라 공부하는 외국어의 방대한 어휘와 전공 서적의 정묘한 지식도 순식간에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기쁘고 은근히 다음 세대에 질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가 송두리째 기호로 치환되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여전히 잘 훈련되고 발달된 뇌 주름이 삶의 열쇠가 될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매체가 변해도 독서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다. '깊은 독서'든 '넓은 독서'든 책 읽기를 통해 그 내용을 고민하고 조합하고 체화시켜 얻은 관점과 그로 인해 발현되는 개인의 능력이 여전히 우리 삶의 중요한 지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독서의 큰 가치는 또한 즐거움이다. 놀이로서의 읽기는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짧은 인생에서 비용을 덜 지불하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가. 헌데 두보의 시 앞 구절을 보면 부귀필종근고득(富貴必從勤苦得)이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이니 하는 표현이 있다. 부귀를 얻으려면 열심히 읽으란 얘기니, 맙소사, 오늘날 모두가 취업과 높은 연봉을 위해 책을 읽는 것과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 않은가. 사는 게 원래 그래, 라고 씁쓸한 농으로 글을 맺게 돼 유감이다.

전수영ㆍ타일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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