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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천사들의 도시' "있던 곳에서 잊혀지면 누구든 죽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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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천사들의 도시' "있던 곳에서 잊혀지면 누구든 죽어야해"

입력
2008.10.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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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지음/민음사 발행ㆍ260쪽ㆍ1만1,000원

2004년 중편 '여자에게 길을 묻다'로 등단한 조해진(32ㆍ사진)씨의 첫 단편집 <천사들의 도시> 는 우리 사회에서의 '관심과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에 서식하는 인물들을 보자. 횡령죄를 저지른 후 자살을 가장하고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는 전직 은행원('지워진 그림자'), 한국남자와 사랑에 빠져 한국에 들어왔다가 남자가 떠난 뒤 부엌가구점에 취직해 생활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여성('인터뷰'), 10여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연상의 한국어 강사와 짧은 동거를 하게 되는 입양인('천사들의 도시') 등이다.

비주류나 사회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런 인물들에 대한 소설적 조명은 흔히 소재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작가는 동정이 아닌 담담한 응시로써 관심과 소통을 열망하는 이들의 몸짓에 대한 공감을 유도해낸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감내의 태도로 나타난다.

가령 아내조차 자신을 못 알아보는 현실에 직면한 은행원 출신의 노숙인은 라면 한 그릇 이상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 '절제의 윤리'를 발휘함으로써 고통을 감내하고, 사랑에 배반당한 고려인 여성은 고작 손바닥만한 고급 부엌가구의 팸플릿을 들여다보는 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뿐이다.

이들의 속울음은 때로는 무력해보이기까지 하지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곳에서 잊혀지면 누구라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죽어야 한다"는 노숙인의 뜨거운 절규까지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들처럼 사회적 배제자로 규정되지는 않지만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무대에 설 수 없게 되는 연극배우('기념사진')나, 하룻밤의 일탈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직장여성('그리고, 일주일')이 보여주는 고뇌의 몸짓도 비슷한 맥락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최근 3년간 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온 조씨는 폴란드에서 1년간 한국어 강사로 일하기 위해 10일 한국을 떠났다. 그는 "입양아, 동성애자, 결혼이주자 등 경계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음 작품들에서 더 설득력있게 형상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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