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려운 경제사정을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고용 부진'입니다. 유럽 각국의 실업률이 높다거나,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얘기는 자주 들어보셨죠? '당선되면 임기 중 일자리를 몇 만개 창출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단골 선거공약일 정도로 경제에서 고용은 중요한 이슈입니다. 왜 다들 일자리, 일자리 하는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A.
일자리, 얼마나 중요한가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젊은 시절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냅니다. 경제적으로도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노동은 기업이 생산을 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일 뿐 아니라 가계에 있어서는 소득의 원천이 됩니다. 조선소에 기술자가 없다면 배를 만들 수 없겠죠? 집안에 일하는 사람이 없다면 쌓아둔 재산이 많지 않고서야 소득이 모자라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 일자리는 국가 경제가 이룩한 성장의 열매를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 좋은 정책을 시행해 경제가 높은 성장을 이루게 되더라도 이를 분배할 수 있는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도 헛수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겁니다.
고용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일자리는 기업에게는 생산에 필요한 요소를 제공하는 수단이고 가계에 있어서는 소득의 원천입니다. 일자리 사정이 좋으면 생산이 원활히 이루어진다는 의미이고 이에 따라 가계도 적당한 소득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가계의 소득은 결국 소비나 저축으로 사용되죠. 소득 증가로 소비가 증가하면 기업 생산이 늘어나고 저축이 증가하면 투자가 늘어납니다. 투자 증가로 생산능력이 커지면 생산이 더욱 늘어나게 되고 그러면 일자리가 다시 늘어나죠. 이렇게 경제의 '선(善)순환'이 이뤄지면 궁극적으로 탄탄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 사정이 좋지 않으면 가계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소비와 저축이 줄어들게 됩니다. 소비 감소는 기업의 제품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져 기업은 생산을 줄이게 되죠. 또 저축이 감소하면 투자가 감소해서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능력이 약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또다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면 경제의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자리 사정은 어떻게 파악하죠?
일자리 사정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표는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취업자 수입니다. 취업자 수로 일자리의 개수를 추정할 수 있으니까요. 이 때 취업자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한다고 해서 다 취업자로 간주되는 것은 아닙니다. 통계청은 '매월 15일이 속한 1주일 동안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취업자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하는 어머니는 일을 하긴 하지만 수입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취업자가 아닙니다.
다만 급여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기가구의 구성원이 경영하는 농장이나 사업체를 위해 주당 18시간 이상 일했다면 예외적으로 취업자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삼촌의 경우는 취업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파악한 취업자 수로 일자리의 개수를 추정해 일자리 사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의 수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일자리의 질도 중요하지요.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소득도 적으면서 일에 대한 만족도 크지 않은 일자리보다 근무여건이 좋고 소득도 많으면서 성취도도 높은 일자리가 당연히 더 좋겠죠? 일자리 중에서도 이런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진정으로 일자리 사정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일자리 사정은 일자리의 수와 질을 모두 따져봐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일자리 사정은 어떤가요
우선 일자리 수가 전과 비교하여 얼마나 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일자리 수로 보면 우리나라의 일자리 사정은 확실히 악화되고 있습니다. 2007년만 하더라도 일자리가 전년보다 28만개 늘어났지만 올해는 8월까지 평균 일자리 수가 작년에 비해 18만개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일자리의 질은 어떨까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취업자를 임금근로자라고 하는데 이 중 고용계약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는 '상용근로자'라 하고 1년 미만인 경우는 '임시일용근로자'라고 합니다. 상용근로자가 고용안정성과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 있는데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의 비중이 높아진 점에 비추어 일자리의 질이 조금 나아졌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올 들어 상용직 비중이 늘어난 것은 상용직이 많이 늘어서 라기보다는 임시일용직이 크게 줄어든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일자리의 질이 좋아졌는지 여부는 여타 정보를 모두 고려한 후 평가할 문제로 보입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일자리 사정은 나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자리의 질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일자리 수가 너무 적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일자리 사정, 앞으로는 나아질까요
일자리 사정은 경기에 많이 좌우됩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기업의 생산이 줄어들게 되고 자연히 기업의 고용도 줄어들게 되니까요. 따라서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될지를 알면 일자리 사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 금융시장 상황에 비추어 보면 가까운 미래에 경기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자리 사정도 당분간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도 구조적인 문제로 경제의 고용 창출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일자리 사정이 좋아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부품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한다거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국내기업이 외국에 공장을 설립하려 한다면 우리나라의 일자리보다 외국의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겠죠.
고학력화 등으로 청년층의 눈높이가 높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웬만한 일자리는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어떤 곳은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문제, 다른 곳은 사람이 없어 문제가 되겠죠.
앞으로 일자리 사정이 나아지려면 경기가 회복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중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우리 경제의 고용 창출력을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풀어쓰는 키워드/ 좋은 일자리란
국제노동기구는 1999년 '좋은 일자리(decent work)'란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고용의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서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에 질적 성장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죠. 일자리가 늘어나더라도 질이 떨어진다면 고용사정이 좋아졌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고 관련 통계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좋은 일자리의 특성으로는 고용 안정성, 적정한 임금, 일에 대한 만족, 좋은 고용조건, 적당한 근로시간 등이 있습니다.
언제 그만둘 지 모르거나 임금이 너무 적거나 보람이 없는 일자리를 좋다고 할 수는 없겠죠? 물론 항상 사고의 위험을 떠안아야 되거나 근로시간이 너무 긴 일자리도 좋다고 할 수 없겠지요. 아직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다양한 기준으로 좋은 일자리가 많은지 적은지 살펴보는 것은 한 나라의 일자리 사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 일자리 사정 얼마나 안좋길래…
올 일자리 창출 최저에 그칠 수도…내수 부진에 글로벌 위기 겹친 탓
올들어 더욱 안 좋아졌다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사정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통계를 갖고 살펴보죠.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은 "역대 정권 중 노태우 정부가 연평균 53만1,000개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냈고 그 다음으로 김영삼 정부(44만1,000개), 전두환 정부(38만1,000개), 박정희 정부(37만7,000개), 노무현 정부(25만3,000개), 김대중 정부(19만1,000개) 순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올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3~8월 사이 6개월간 수치를 볼 때, 연간 16만9,000개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습니다.
꼭 재임순서대로는 아니지만 대체로 우리 경제가 10% 안팎의 고성장을 할 때는 일자리가 많이 늘었고 그보다 성장률 수준이 낮아진 2000년대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데요. 경제성장률이 높을 때는 그만큼 경제가 활력을 띠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뚝 떨어진 증가율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발전이 없겠죠? 그래서 요즘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왜 더 악화됐냐구요? 아무래도 우리 힘으로 피해가기 어려운 세계적 금융위기의 영향이 큽니다. 국내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있구요.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수 부진, 제도 변화, 구직단념자 증가 등으로 고용시장이 침체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기 둔화로 소비가 줄면, 특히 서비스업이 타격을 많이 받는데요. 올 상반기 서비스업 취업자 수는 23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지난해 같은기간 34만9,000여명 증가에 비해 10만명 이상 고용이 줄었습니다. 제조업이 작년보다 2만4,000여명 준 것보다 훨씬 더 한거죠.
제도 변화도 한 몫 했습니다. 지난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가 쉬워져 비정규직 형태의 취업자 수는 크게 줄고 있지만 경기 부진으로 기업들이 정규직은 잘 안 뽑고 있는 탓입니다.
그런데도 실업률은 3.2%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는 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 증가속도가 점차 줄어들고 아예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늘어난 때문입니다. 실업자 분류에서 제외되는 비경제활동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죠.
한국은행 조사국 임웅지 조사역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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